채수빈이 개과천선하고 학교로 돌아왔다. 전교1등 이원근에게 누명을 씌워 시험기회를 박탈하고, 정은지를 죽이겠다며 계단에서 밀어 넘어뜨리고, 학생의 편에 선 선생님을 성추행범으로 몰 정도로 독했던 그의 변신은 학원물 특유의 훈훈한 우정으로 포장됐다.
지난 9일 방송된 KBS 2TV '발칙하게 고고'에서는 그동안 저지른 악행을 반성하며 학교로 다시 돌아온 수아(채수빈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수아는 모든 악행을 뒤로하고 유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연두 등 치어리딩부 친구들이 보내준 동영상에 마음이 움직였다. 수아는 현미에게 학교로 돌아가 징계를 받고 다시 시작하겠다고 말했고 학교로 돌아온 수아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수아는 아이비리그를 목표로 무결점 스펙을 위해 엄마 현미(고수희 분)의 지시대로만 살아온 인물. 이에 따라 수아 본인도 학교 내 친구는 없다면서, 전교 1등 열(이원근 분)을 궁지로 몰기 위해 연두(정은지 분)를 이용하는 등 어떤 일도 마다치 않는 모습으로 극 갈등의 중심에 선 바 있다. 이에 성적지상주의 안에서 온갖 극악무도한 행위를 저질렀던 수아가 우정으로 용서받고 다시 시작하는 모습은 어딘가 답답함을 안겼다. 악행을 저지른 이들을 일벌백계해 사이다 결말을 안기던 그간의 '학교' 시리즈와는 노선이 달랐던 것.
특히 수아가 친구들 품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설득력 있게 그려지지 않았다는 반응. 수아는 엄마를 만족하게 하려 엄마가 그려준 큰 그림 안에서 본인 스스로 친구를 배신하고 궁지로 몰아넣는 다양한 일을 펼쳐오며 악녀의 모습을 보였는데, 그 과정에 친구들을 그저 경쟁자로 인식하거나 깔보는 그의 생각이 반복해 드러나며 수아라는 인물 자체의 우월주의를 엿보게 한 바 있다. 그런 그가 친구들의 응원에 한순간 마음을 바꿔 세상 누구보다 무섭던 엄마의 말을 거역하고, 절대 권력자이던 엄마 또한 그를 잡지 못했다는 설정이 의아함을 남겼다.
또 수아는 극의 초반부터 엄마의 압박 속에서 힘들어하면서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으로 그의 내면 한가운데 자리한 아픔을 공개, 힘있게 극을 끌어가야 할 악녀 캐릭터의 힘을 분산시켜 아쉬움을 남긴 바 있는데, 그럼에도 또다시 이어진 악행과 또 한 번의 자살 시도, 마지막에 이르러서도 너무 쉽게 친구들 품에 돌아가는 모습이 반복돼 시청자가 그의 감정선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했다.
수아를 연기하는 채수빈은 수아의 감정선을 시청자에게 세심하게 전달하지 못해 아쉬움을 더했다. 채수빈은 수아에게 어떤 아픔이 있는지 초반 공개됐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불안감과 초조함으로 인한 안타까움을 단순하게 표현했던 것. 채수빈은 극중 두 번이나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불안한 수아의 감정을 그저 악녀의 신경질적인 모습으로 그려내 그가 마지막에 친구들의 품으로 뛰어드는 장면에서의 감동을 반감시켰다.
또 정은지와 이원근, 지수(하준 역) 등 삼각 러브라인이 활활 타오르며 이들의 마지막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는 가운데, 극중 두 번째 커플인 채수빈과 엔(동재 역)의 이야기가 끝까지 중심을 잡지 못해 극을 풍성하게 채우지 못했다. 채수빈의 진짜 얼굴을 모두 지켜보고, 달리는 차 속에 뛰어든 그를 구해주고, 본인의 신체접촉장애도 극복한 엔의 이야기는 러브라인을 주요하게 다루는 이 드라마에서 충분히 다뤄져야 했을 이야기지만, 이들이 함께 있는 장면에서는 기대만큼의 케미가 살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jykwon@osen.co.kr
[사진]'발칙하게 고고'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