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원근이 캐릭터의 다양한 매력을 모두 제 것으로 소화하며 KBS 2TV '발칙하게 고고'의 중심을 단단히 잡았다. MBC '해를 품은 달'의 송재림 아역으로 데뷔해 몇 편의 드라마를 거친 그가 월화드라마 주인공으로 나선다고 했을 때 우려의 시선이 있던 것이 사실이지만, 이원근은 오로지 본인의 실력으로 물음표를 느낌표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원근은 극중 전교 1등 김열 역할로 분했다. 김열은 우월한 외모에 명석한 두뇌로 성적지상주의 자사고 세빛고에서 서열 1위로 군림하는 캐릭터. 여기에 까칠한 성격이지만 자기 사람들에게만 보이는 진득한 우정과 의리 등 빠지는 것 없는 설정이 더해져 사기 캐릭터라고 불려도 좋을 독보적인 남자 주인공의 위치를 완성했다.
이처럼 흠결이 없는 캐릭터는 현실감이 떨어질 수 있는데, 이원근은 이 같은 김열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데 성공했다는 평. 이원근은 만화 같은 우월한 외모로 김열의 까칠함과 능청스러운 애교를 물 흐르듯 표현해내고,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인한 성장스토리까지 녹여내며 그를 전폭적으로 응원하게 만들었다. 이원근은 만화적으로 보일 수 있는 멋진 캐릭터를 현실에 발붙이게 하는 자연스러운 연기력으로 시청자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내는 저력을 보였던 것.
또 이원근은 학교 내에서 일어나는 일에 먼저 나서 부조리함의 상징인 교장 경란(박해미 분)과 독대하고, 여자주인공 연두(정은지 분)를 괴롭히는 악녀, 수아(채수빈 분)에 전혀 휘둘리지 않고 거짓말을 간파해 그를 막아서는 사이다 역할까지 소화해내는 등 드라마 속 남자 캐릭터가 가질 수 있는 모든 좋은 설정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녹여내 호평받았다.
물론 이원근의 이 같은 독보적인 '멋짐'에는 부작용도 따랐다. 이원근이 모든 주요 설정을 독식하고, 이를 너무나도 잘 살린 탓에 그와 팽팽한 삼각 러브라인을 끌어가야 했던 다른 남자 캐릭터가 잘 표현되지 않은 것. 이 같은 역할은 '앵그리맘'에서 무려 김희선과의 로맨스로 애틋한 순정을 그려내 설렘을 선사했던 지수가 맡았는데, 지수는 이번 극에서 학대 당한 아픈 속내를 안고 있는, 무뚝뚝하고 표현할 줄 모르는 설정 하나로 고군분투했다.
전작 '후아유-학교2015'에서는 이안 역 남주혁과 태광 역 육성재가 전혀 다른 매력의 팽팽한 양분화로 마지막까지 은비(김소현 분)와의 러브라인을 예측할 수 없게 해 시청자를 들끓게 하며 시청률을 견인했는데, 이번에는 캐릭터 설정부터 이원근의 원맨쇼가 펼쳐졌기 때문에 러브라인의 균형이 맞지 않아 긴장감이 실종됐다는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본인의 캐릭터를 200% 이상 소화해낸 이원근은 이번 작품으로 인해 중국 팬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얻는 등 국내 드라마 시장에서 시청률이 참패한 이번 극의 최대 수혜자가 됐다. /jykwon@osen.co.kr
[사진] '발칙하게 고고'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