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주지가 개새끼가 아니다. 새끼 잃은 호랑이다.”
단 한 마디에 담긴 분노와 카리스마가 안방극장을 압도했다. 과연 이성계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캐릭터에 완벽하게 몰입한 배우 천호진의 모습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초반 전개상 적은 분량을 메우듯 존재감을 뽐내는 그에게 시청자들의 찬사가 쏟아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지난 10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나르샤’ 12회에서는 아들 이방원(유아인 분)을 구하기 위해 고려에 입성한 이성계(천호진 분)의 모습이 그려졌다. 자신의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과 의리를 가장 중요시하는 인물인 만큼, 아들 이방원을 건드린 이인겸(최종원 분)을 향한 그의 분노는 어마어마했다.
그는 이인겸과 적당한 때를 살피고 있을 것이라는 정도전(김명민 분)의 예상을 완전히 뒤엎었다. 호발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자마자 이인겸의 저택을 찾은 그는 활과 화살을 등에 지고 몸의 여기저기에는 적들의 피를 묻힌 살기등등한 기세로 “방원이를 당장 풀어달라”고 말했다. 이에 애써 당황함을 감춘 이인겸은 안변책을 거두고 함주로 떠나라고 명령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춘다면 이성계가 아닐 터. 그는 "내 울타리 사람을 잘못 건드렸소. 거래를 하려면 활을 들고 오지 않았겠지. 나는 초주지가 개새끼가 아니라, 새끼 잃은 호랑이라오. 내가 명예롭지 않으면 내 사람을 지킬 수 없소"라며 이인겸과 본격적인 기싸움을 벌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말없이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만으로 주변의 공기를 얼어붙게 만드는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이어 그는 “흔히 사람들이 오해를 하는 것이 있소. 활과 화살은 당연히 원거리 무기라는 편견말이오.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이성계에게는 아니라오”라며 이인겸의 호위무사들을 향해 “너희 여섯이 아니라 그 무엇이 어찌한다 해도 내가 이인겸을 쏘는 것보다 빠를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활과 화살이 있는 한 문하시중의 목숨을 결코 구할 수는 없어”라고 경고했다. 살기를 거둔 이성계가 마지막까지 내건 것은 내일 아침까지 이방원을 풀어주라는 조건 단 하나였다.
이후 이성계는 곧장 삼봉과 조우했다. 그는 삼봉을 향해 "나와 새 나라를 만들자고 했소. 내 울타리 안의 사람들을 지키기는 것 외에는 못 해. 내 사람들 지키기 위해서 정치를 해야겠어. 도당에 들어가야 되겠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은 곧 행동이 됐다. 극의 말미에는 마침내 도당에 입성해 이방원을 살릴 증좌를 대고 이인겸에 맞서는 이성계의 모습이 그려지며 궁금증을 높였다.
그간 이 시대 자상한 아버지상과도 같은 캐릭터들을 소화하며 친근한 이미지를 쌓았던 천호진이 이번에는 이성계로 완벽하게 분해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마침내 정도전과 손을 잡고 신조선을 향한 길을 걷기 시작한 그가 어떠한 카리스마로 고려를 끝장낼 수 있을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 jsy901104@osen.co.kr
[사진] '육룡이 나르샤'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