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할 여지없는 ‘믿보황’이었다. 지난 2002년 걸그룹 슈가로 데뷔한 그는 연기에 전념하기 위해 탈퇴를 선언한 이후로 탁월한 작품 선택 능력을 뽐내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하지만 그가 처음부터 이렇게 주목을 받는 배우는 아니었다. 걸그룹 출신이라는 편견에 부딪혀야 했고, 스스로 이를 극복해내야 했다.
그럼에도 ‘자이언트’, ‘비밀’, ‘킬미힐미’ 등 황정음을 지금의 자리에 있게 만든 작품들은 셀 수 없이 많지만, 단연 독보적인 대중의 사랑을 독차지한 작품은 ‘그녀는 예뻤다’라고 말할 수 있다. 시청자들은 김혜진 역으로 분한 황정음의 아픔에 공감했고, 우정에 질투했으며, 사랑에 설렜다.
“일단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고 무사히 촬영을 잘 마쳐서 감사해요. 사실 2개월 동안 하루에 한 시간씩 자면서 촬영했거든요. 제 정으로 연기한 적이 거의 없어서 스태프들도 너무 안쓰러워했어요.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혜진이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보내기 싫어요. 언제 또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요. 드라마라는 작업이 참 매력적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새삼 느꼈고 감사하게 생각해요.”
극중 황정음은 캐릭터의 특징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못생기게 분장도 하고, 신발 밑창이 떨어지는 등 망가짐을 불사했다. 이러한 그의 모습에 미디어를 비롯해 대중들 역시 이 드라마의 팔 할은 황정음이 이끌어간다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작품은 절대적으로 한 명만 잘해서 될 수 있는 그런 쉬운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도 특히 황석정 언니나, 신동미 선배님.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로 나오는 선배님들, 아역 분들에게 모두 감사해요. 감독님이 캐스팅을 너무 잘하셨어요. 이번 드라마는 각자 자리에서 한 명도 어긋나는 게 없이 자기 역할을 너무 잘해준 것 같아요. 잘 될 수밖에 없었던 작품이었던 거죠. '비밀' 때도 그랬어요. 내용은 다르지만 현장 분위기나 서로 아껴주고 으쌰으쌰하고 욕심 안냈던 게 비슷한 것 같아요.”
김혜진 캐릭터는 시놉시스부터 ‘못생김’이 강조된 인물로, 이를 연기하는 황정음 역시 몸을 사리지 않는 망가짐으로 예쁜 외모를 포기해야 했다. 이는 여배우로서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
“감독님이랑 작가님이 혜진이의 못생김에 대해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망가뜨리셨더라고요. 물론 제가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겠지만, 하라는 대로 했어요. 믿음이 있었으니까. 시안을 봤는데 어마어마했어요. 이게 맞나 싶었죠. 여배우는 예뻐야 하는데 시청자들이 과연 ‘이걸 보고 채널을 안 돌릴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있었어요. 준희는 되게 예쁜데 제가 너무 못생기게 나오면...물론 나중에 예뻐지긴 하지만 그런 걱정을 혼자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고집했던 건 못생겼지만 ‘성격까지 궁상맞게 가지는 말자’였어요. 감독님은 그런 걸 원하셨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서 저는 열심히 피해다녔죠. 그래도 작가님이 혜진이를 너무 사랑스럽게 써주셔서 걱정할 필요가 없었던 걱정을 했던 것 같아요. 못생긴 얼굴이 안 보이고, 어느 순간은 예뻐 보이기까지 했어요. 그리고 애초에 캐스팅 당시에 ‘내가 아무리 망가져도 고준희라는 예쁜 친구가 채널이 안 돌아가게 해주면 된다’라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예뻤다’는 크나큰 인기만큼이나, 작품에 대한 사소한 것 하나까지 모든 이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특히 결말을 앞두고 있던 때에는 ‘혜진이 죽을 것이다’, ‘모든 것이 텐의 소설이었을 것이다’를 두고 많은 이들이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저는 그냥 연기만 열심히 해요. 대본이 이렇게 나왔고 저렇게 나왔는데 이게 안 좋고 하는 것보다 제 것만 열심히 해요. 결말이나 내용이 어떻게 되던 그건 작가와 감독님이 할 부분인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결말에 대해 궁금해 하셨는데 저는 안 궁금했어요. 되게 신기하죠?(웃음) 제가 쉽게 의견을 내고 생각하다 보면 작품이 산으로 가게 돼요. 조심스러워서 얘기 안 하기도 하고, 비중이 누가 많거나 적어도 얘기 안 하고 믿고 가요. 어쩔 수 없어요. 다음 작품에서 잘 하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그녀는 예뻤다’는 새드엔딩보다 해피엔딩이 좋았던 것 같아요. 제목이 ‘그녀는 예뻤다’인데 새드로 가면 어울리지 않으니까. 저는 제목이 좋아서 이 작품을 한 것도 있거든요.”
이날 황정음은 여전히 연기 수업을 받는다고 고백해 놀라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대본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고집이자 철칙을 지키기 위해 매순간 노력하는 그는 놀랍게도 ‘발연기’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아이돌 출신이다.
“연기를 처음 시작할 때는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감독님이 캐스팅 해주시고 회사에서 오디션 보라고 하면 보고 편하게 캐스팅되고. 그런데 ‘하이킥’이라는 작품을 만나면서 연기에 대한 재미를 느꼈어요. CF도 찍고 인기도 많아지고, 하루아침에 너무 많은 걸 누려서 ‘배우가 정말 좋은 직업이구나’라는 걸 깨달았어요. 지금까지 쉬지 않고 달려왔는데 ‘어차피 시작한 건데 최고가 돼봐야겠다’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달려왔어요. 저는 연기자가 아니라 애초에 가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다른 시선으로 보니까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죠. 완벽주의자랑은 완전히 다른 사람인데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아침에 스태프들이 늦는 것도 용납이 안 됐어요. 욕심이 저를 그렇게 만들었어요. 좋은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일일이 계산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편하게 그 대신 열심히 했어요.”
그의 숨은 노력들이 켜켜이 쌓여 이제는 ‘믿고 보는 배우’라는 수식어까지 얻었다. 그만큼 본인이 느끼는 책임감과 부담감 역시 남다를 터.
“‘믿보황’이라는 수식어는 일부러 생각 안 하려고 해요. 괜히 생각하면 어색한 행동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원래 저 하는 대로 하죠. 원래 사람이 잘 될 때도 있고 못 될 때도 있잖아요. 항상 하는 생각은 진화하고 발전해야 된다는 거예요. 대중들은 항상 신선한 것을 원하고 새로운 것을 원하기 때문에 제 자리에 있지 않고 열심히만 하면 될 것 같아요. 그 외의 것들은 제가 원한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니까.”
그는 매 작품들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뜻 깊은 이야기를 전했다. ‘비밀’에서는 사랑을 주는 법에 대해, ‘킬미힐미’에서는 진짜 자신을 찾는 법에 대해, 그리고 ‘그녀는 예뻤다’에서는 자신의 삶에서 조연이 아닌 주인공이 되는 법에 대해 얘기했다.
“모든 건 자기가 생각하기 나름이에요. 자기 생각이 자기를 만드는 거죠. 좋은 생각, 예쁜 생각이 제일 중요해요. 저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아기 때부터 자신감이 유별났던 것 같아요. 아무 것도 아닌데 자신감이 넘쳐서 친구들이 ‘쟤 왜 저래’ 할 정도였어요(웃음). 근데 그 자신감이 지금의, 지금 뭐 아무것도 아니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 힘든 것도 좋은 것도, 아무 것도 탓할 필요가 없어요. 중요한 건 이상한 생각하지 말고 자기 일 열심히 하는 건데, 사실그게 잘 안되죠. 저도 제가 연기할 때 잘하면 자신감 있지만, 못하면 등신 같거든요(웃음). 모든 사람이 수많은 고민과 그런 상황들에 놓여요. 결국에 헤쳐 나가야 하는 것도 본인의 몫인거죠.” / jsy901104@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