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안방극장의 뒷목을 잡게 만드는 배우가 있다. MBC 주말드라마 ‘내딸 금사월’에서 악역 오혜상을 연기하는 박세영(27)이 주인공이다.
강만후(손창민 분)와 함께 이 드라마의 악의 축인 혜상. 매회 거짓말과 모략으로 금사월(백진희 분)을 곤경에 빠뜨리는 혜상은 사월의 친 아버지 오민호(박상원 분)를 가로채고 사랑하는 남자 강찬빈(윤현민 분)까지 빼앗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중이다.
사월이의 행복을 방해하는 일등공신인 혜상의 거짓말은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혜상을 연기하는 박세영의 표독스러운 연기도 회가 거듭될수록 강해진다. 박세영은 데뷔 후 가장 강렬한 인물을 연기하고 있다. 짙은 화장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혜상의 채워지지 않는 야망을 담고 있다.
늘 소리를 지르거나 눈을 부라리는 연기로 시청자들의 분노를 유발하고 있다. 워낙 그동안 선한 인물을 주로 연기했던 까닭에 박세영의 연기 변신은 초반 어색하기도 했던 것이 사실. 허나 극이 진행될수록 물이 오른 악역 연기로 드라마의 재미를 위한 ‘욕받이’ 역할을 철저히 수행 중이다. 박세영은 이번 드라마를 위해 4~5kg 정도 몸무게 감량을 했다. 덕분에 좀 더 강한 인상의 혜상을 표현할 수 있었다.
“작품 전 쉬는 동안에 살이 조금 쪘었어요.(웃음) 쉬면서 열심히 먹었더니...하하하. 작품 전 4~5kg을 빼기도 했고, 전작에서는 색조 화장을 거의 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짙은 화장을 하는 이번 작품과 인상이 다르게 보일 거예요. 저도 처음에는 제 얼굴이 어색했거든요. 화장을 너무 진하게 했나 싶었죠. 이제는 적응해서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렇게 센 악역은 처음인데, 긴장이 되긴 하지만 재밌어요.”
‘내딸 금사월’은 ‘아내의 유혹’, ‘왔다 장보리’ 등을 집필하며 극성 강한 자극적인 드라마를 만들어온 김순옥 작가가 집필을 맡았다. 김 작가는 전작인 ‘왔다 장보리’에서 불사조 같이 살아남는 악역인 연민정(이유리 분)을 만들어 시청자들을 기함하게 했다. 물론 연민정이 못된 행각을 벌이면 벌일수록 시청률이 쑥쑥 올라가며 흥미를 자극하긴 했지만 말이다. 박세영은 처음 악역 제의를 받고 연기 변신에 대한 걱정이 없었을까.
“악역을 해보고 싶었어요. 다양한 캐릭터를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게 모든 연기자들의 바람이죠. 캐릭터가 정말 좋아서 해보고 싶었어요. 주위 사람들은 너무 나쁜 이미지로 굳어지는 게 아니냐고 걱정을 하시긴 했는데, 전 걱정하지 않았어요. 만약에 제가 혜상이로 나쁜 이미지가 생긴다고 해도, 새로운 캐릭터를 보여주면 바뀔 것이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많은 시청자들이 제가 전작까지는 착한 캐릭터가 어울린다고 생각하셨잖아요. 이번 작품을 통해 나쁜 캐릭터가 어울린다고 생각하신다면 또 다른 작품을 하면 다시 바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악역 이미지가 굳어지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하지 않죠.”
‘내딸 금사월’ 관련 뉴스에는 혜상이가 저지르는 악행에 대한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드라마가 사랑을 받고 관심을 끈다는 방증이겠지만, 연기하는 배우로서 걱정은 없을까.
“저도 대본을 보면서 ‘우와 이건 너무 나쁘다’라는 생각이 들긴 해요. 그래도 연기하는 배우로서 이해를 하려고 하죠. 제 친구가 지인한테 제가 친구라고 말을 했대요. 그런데 그 지인이 ‘박세영 평소에 어때? 드라마처럼 원래 그래?’라고 묻더래요. 하하하. 저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고맙게도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이웃 분들이 ‘파이팅’이라고 응원을 해주시더라고요. 제가 너무 나쁘게 연기를 하고 있다고 계속 열심히 하라고 어르신들이 그러시더라고요.(웃음)”
박세영은 작품 시작 전, 그리고 작품에 임하면서 끊임 없이 캐릭터를 연구했다. 어떻게 연기를 해야 더 못돼 보일 수 있을까, 어떻게 연기를 해야 혜상이의 아픈 면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혜상이를 이해하려고 했어요. 혜상이는 목표의식이 뚜렷하잖아요. 자신이 성공하기 위해 어떤 일을 벌어야 하는지 알고요. 앞만 보고 돌진하는 모습, 어떻게 보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해를 하려고 했어요. 정말 못 됐지만, 그래도 열심히 사는 모습은 매력이 있다고 봐주시면 어떨까요?”
혜상을 연기하며 매회 소리를 지르고 화난 표정을 연기하는 일은 쉽지 않다. 체력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는 생각에 비타민을 챙겨먹고 있다는 게 박세영의 귀여운 노력이다.
“사실 평소에는 소리를 지를 일이 없잖아요. 제가 소리를 지르면 어색하게 보일까봐 고민했죠. 그런데 막상 해보니깐 쾌감이 있긴 있어요.(웃음) 언제 한 번 이렇게 소리를 질러보겠어요? 혜상이를 통해서 아무 감정이나 표출하는 시원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좀 더 힘 있게 소리를 지르기 위해 중요한 장면이 있으면 열심히 챙겨먹어요.(웃음)”
제작진은 박세영에게 예쁜 외모의 악역을 주문했다.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에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특히 혜상이가 앞에서는 착한 척 했다가 뒤에서는 모략을 꾸미는 이중적인 성격을 잘 표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혜상이가 현재는 딴 곳에 정신이 팔린 것 같아요. 찬빈이한테 빠져 있죠.(웃음) 그래서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는데, 조금은 더 똑똑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혜상이는 열심히 하려는데 많은 사람들이 사월이만 챙기잖아요. 점점 더 삐뚤어질 거예요.”
아무래도 김순옥 작가의 작품이다 보니, 그리고 ‘왔다 장보리’와 비슷한 설정이 많다 보니 여러모로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왔다 장보리’는 지난 해 하반기 ‘연민정 신드롬’을 일으키며 악역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초반 연민정과 오혜상을 비교하는 시선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인기를 얻었던 연민정과의 비교가 혜상을 연기하는 배우로서 부담스럽진 않았을까.
“부담이 안 되진 않아요. ‘왔다 장보리’는 제가 출연했던 ‘기분 좋은 날’의 동시간대 드라마였어요. 사실 ‘왔다 장보리’를 많이 보진 못했죠. 이 작품 출연이 결정된 후에는 혹시 저도 모르게 연민정과 비슷하게 표현을 할까봐 일부러 안 봤어요. 저도 모르게 비슷하게 연기를 할 수 있으니까요. 연민정은 내숭이 없었잖아요. 그런데 혜상은 내숭이 많아요. 그런 점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내딸 금사월’은 박원숙, 박상원, 손창민, 전인화 등 내로라하는 중견 배우들이 열연을 펼치고 있다. 아직 어린 배우인 박세영에게는 촬영장이 곧 연기 학교와 다름이 없다.
“선생님들이 먼저 세트장에 오셔서 연기 연습을 하시니깐, 저도 더 빨리 오게 돼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을 하죠. 선생님들이 촬영장에서 대본을 손에 놓지 않으니까 저도 그렇게 하게 되죠. 제가 손창민 선생님과 연기하는 장면이 많은데, 얼마 전에 재밌게 소리를 지르는 장면을 처음으로 눈앞에서 봤어요. 늘 화면에서 보면서 무섭지만 코믹한 요소가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직접 눈으로 보니 놀랍더라고요. 선생님과 리허설을 하면서 대사 연습을 하는데, 워낙 연습을 많이 하시니깐 저도 계속 연습을 하고 배우는 게 많더라고요.”
박세영이 바라는 ‘내딸 금사월’의 결말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권선징악을 다룰 예정이니, 그가 연기하는 혜상은 몰락할 가능성이 높다.
“악랄한 사람들은 벌을 받지 않을까요?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이 모두 깨닫는 시간도 있을 것 같고요. 바람이 있다면 혜상이를 비롯한 극중 인물들이 치유를 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진실이 공개되는 순간, 모든 사람들이 상처를 받잖아요. 현재는 극중 사람들도 아프고, 보는 시청자들도 긴장을 하면서 보잖아요. 마지막에는 모두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였으면 좋겠어요.”
일단 악역으로 변신해 안정적으로 드라마를 끌고 가고 있는 박세영. 이 작품이 끝나면 배우 박세영에게는 무엇이 남을까.
“‘내딸 금사월’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제게 또 다른 이미지가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이런 캐릭터도 하고, 저런 캐릭터도 할 수 있는 배우라는 것을 말이죠. 드라마는 저를 전혀 모르는 분들에게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이 정말 재밌어요. 촬영을 하면서 힘든 순간도 있지만 연기를 하면 힘든 순간을 잊게 돼요. 제 안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니까 저도 모르게 중독이 되더라고요. ‘내딸 금사월’은 50부작이에요. 지금은 더 열심히 달려야 할 때인 것 같아요.” / jmpyo@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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