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박한별은 자신이 연기하고 있는 강설리에 대해 악녀가 아니라고 했지만, 시청자들의 생각은 다른 듯 하다. 물론 밥 먹듯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양심의 가책 한 번 느끼지 않는 그간의 악녀들과는 좀 다른 모습이지만, 박한별표 강설리 역시 칼에 찔려 죽어가는 사람을 모른 척 하거나 의식을 잃고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이에게 죽으라고 저주를 퍼붓는 모습으로 시청자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여기에 박한별의 다소 미흡한 연기력까지 더해져 큰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박한별은 SBS 주말드라마 ‘애인있어요’(극본 배유미, 연출 최문석)에서 최진언(지진희 분)을 사랑하는 강설리 역을 맡고 있다. 사실 강설리는 극 초반 아픔이 많은 인물로 그려졌다. 어릴 적 버림 받아 엄마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지만 우듬지 식구들과 함께 밝고 긍정적으로 자랐다. 홀로서기 위해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유통기한이 지난 김밥으로 끼니를 떼우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모난 구석 하나 없는 모습은 강설리의 최대 장점이었다.
그런데 유부남인 최진언을 사랑하게 되면서 인생이 꼬여도 한참 꼬여버렸다. 자신의 사랑은 불륜이 아니고, 뺏은 사람보다 뺏긴 사람이 더 나쁘다는 말을 최진언의 아내인 도해강(김현주 분)에게 당당하게 하는 등 불륜을 정당화시켜 시청자들의 분노를 유발했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말을 제대로 보여준 것. 그리고 지금은 기억을 잃은 도해강에게서 최진언을 빼앗기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고 있는 상황.
도해강이 사실은 최진언의 전처임을 정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모른 척 할 뿐만 아니라, 도해강의 뺨을 때리고 면전에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발악을 해댔다. 일들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지금도 자신의 사랑만은 꼭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14일 방송된 22회에서 강설리는 도해강이 칼에 찔려 위급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모른 척 했다.
또 뒤늦게 병원을 찾아서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백석에게 “깨어날거야”라고 거짓 위로를 했다. 그리고 속으로는 ‘안돼. 깨어나지마. 이대로 죽어’라고 저주를 퍼부으며 악녀 본색을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밀어내는 최진언 앞에서는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마냥 애절한 눈물을 흘려 시청자들은 뒷목을 잡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전혀 발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박한별의 아쉬운 연기력이다. 분명 분노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목소리 톤만 조금 높아졌을 뿐 표정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다. 또 무미건조한 말투나 다소 부정확한 발음은 강설리의 존재감을 현격히 떨어뜨리는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눈물은 흘리고 있지만, 애틋한 감정선은 느껴지지 않으니 강설리만 등장했다 하면 답답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분명 김현주, 지진희, 이규한과 함께 극적 긴장감을 형성해야 하는 주요 출연자인 박한별이 남은 28회 동안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한편 ‘애인있어요’는 기억을 잃은 여자가 죽도록 증오했던 남편과 다시 사랑에 빠지는 동화 같은 사랑 이야기와 절망의 끝에서 운명적으로 재회한 극과 극 쌍둥이 자매의 파란만장 인생 리셋 스토리를 담은 드라마다. /parkjy@osen.co.kr
[사진] ‘애인있어요’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