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데뷔 25년차를 맞은 배우 김호진(46)은 서글서글한 인상과 듣기 좋은 목소리로 줄곧 ‘훈남’ 이미지를 유지해왔다. 그랬던 그가 ‘화려한 유혹’을 통해 과감한 변신을 꾀했다. 단순한 악역을 넘어서 애정결핍을 기반한 파괴적인 면모를 뽐내는 김호진의 연기에 안방극장도 긴장해야 했다.
김호진은 MBC 월화드라마 ‘화려한 유혹’에서 권무혁 역을 맡아 출연 중이다. 악역이라는 캐릭터가 대부분 강한 임팩트를 가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를 살리는 것은 전적으로 배우의 몫이다. 그리고 김호진은 권무혁이 가진 악함과 잔인한 성정을 잔잔하지만, 극적으로 살려내는 섬세한 연기로 시청자들의 호평을 얻고 있다.
“월화드라마 경쟁작이 워낙 대단한 작품들이라 걱정했는데, 저희 드라마에 대한 반응이 좋아서 기분 좋죠. 저 역시 권무혁이라는 캐릭터를 즐겁게 연기하고 있어요. ‘화려한 유혹’ 바로 전에 카메오로 출연했던 ‘내딸 금사월’에서는 선한 역할이었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반대로 악한 역할이니까 재밌어요. 제가 알기론 이 작품에 제가 가장 먼저 캐스팅 됐다고 하더라고요. 저를 믿고 캐스팅 해주신 거니까 기분 좋았죠.”
권무혁은 원하는 바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가차 없이 주변인들에게 위협을 가하는 인물로, 특히 아내 강일주(차예련 분)에 대한 집착이 남다르다. 그 중에서도 인상 깊었던 것은 극중 일주의 머리카락을 책 사이에 몰래 끼워놓은 것.
“그 장면은 제가 봐도 소름끼쳤어요. 원래 시놉이나 대본에는 그것보다 더 무서운 것도 많았어요. 감독님과 제가 상의해서 지우거나 살짝 고친 대사들도 있고. 일주가 권무혁에게 몹쓸 짓을 당하는 장면 역시, 원래 대본에는 성폭행이라는 단어가 나왔었는데, 방송에서는 나오지 않아요. 저희끼리는 그냥 실패로 끝났다고 생각하고 넘어갔어요."
권무혁은 다른 악역들과 달리, 분노를 겉으로 표출하는 것보다 표정과 눈빛으로 모든 것을 제압하는 인물이라 더욱 섬뜩하다. 오죽하면 시청자들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눈웃음’마저 무섭다고 말할 정도.
“저는 그런 반응을 보면 오히려 기분이 너무 좋아요. 제가 권무혁이라는 캐릭터를 잘 표현했다는 의미니까. 아내는 더 무섭게 하라고 말하더라고요(웃음). 나름 웃는 얼굴로 한 몫 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다들 무섭다고 하시니까 재밌기도 하고. 실제로 제 주변 분들도 ‘네가 그런 사람인 줄 몰랐다’라고 문자 보내기도 하셨어요. 사실 ‘노란손수건’이라는 작품에서도 악역을 연기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착한 이미지로 많이 기억을 하시는 것 같아요.”
앞서 언급했듯이 권무혁은 원하는 것, 특히 아내 일주에 유별난 집착을 가지는 인물이다. 이에 대해 김호진은 누구나 집착하는 것이 있다며 권무혁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사실 권무혁이 집착을 표현하는 방법이 무서워서 그렇지 누구나 집착하는 무언가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 뉴스 보면 사랑 때문에 옳지 않은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권무혁도 사이코패스라기 보다 사랑 때문에 극단적인 일을 꾸미는 인물일 뿐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지금 생각해보니 한 때 요리에 집착했었던 것 같아요. 요리 자격증을 7개나 따고, 직접 레스토랑 운영까지 했었어요. 물론 제가 부엌에서 직접 요리도 했고요. 지금은 가게를 접었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데뷔한지 벌써 25년이 훌쩍 넘은 김호진이지만 여전히 연기에 대한 열정이 넘쳤다. 그토록 집착하던 연기를 그만둔 이유도 연기와 요리 두 가지 일을 함께 하는 동안 그 어느 것에도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또한 요리보다는 연기가 자신의 본업이라고 생각, 결국 레스토랑을 접고 연기에 몰입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요? 배우라면 누구나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다들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젠 저의 웃는 얼굴이 무섭다는 말도 저의 다른 모습을 보여드렸다는 말이니까 듣기 좋고 신나요. 앞으로도 다양한 연기를 보여드리면서 죽을 때까지 평생 연기하고 싶어요.” / jsy901104@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