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心) 스틸러’. 영화, 드라마에서 훌륭한 연기력과 독특한 개성으로 주연 못지않게 대중의 관심을 받은 조연을 말한다. 이른바 ‘마음을 훔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여기 ‘심 스틸러’ 대열에 새롭게 이름을 올린 배우 한 명이 있다.
인터뷰를 위해 걸어들어오는 배우 안세하를 보자마자 씨익 미소가 번졌다. 드라마 속 김풍호 캐릭터를 만난 듯 반갑고 기뻤다. 그와 마주하자 단박에 느껴졌다. 브라운관 속 거리감이 느껴지는 배우가 아니라 마치 옆집에 사는 이웃 같다고 할까. 서로 묻고 답하면서 하하하, 웃음이 터졌고, 자연스럽게 상대를 무장 해제시켰다. 안세하라는 사람이 그저 연기를 하는 배우가 아닌 플러스알파의 무언가를 지닌 사람이라는 뜻이다.
안세하는 인기리에 종영한 MBC 수목드라마 ‘그녀는 예뻤다’(극본 조성희, 연출 정대윤·이하 ‘그예’)에서 피처 디렉터 김풍호를 연기했다. 풍호는 패션 감각 넘치는 다른 디렉터들과 달리 덥수룩한 머리에 수염 가득한 얼굴로 일부러 ‘못생김’을 자처하는 듯 웃음을 유발했다.
그는 항상 효자손 하나를 들고 다니며 시도 때도 없이 여기저기를 긁어댔다. 당연히 여자들이 좋아할 리 만무했다. 하지만 드디어 여자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으니, 그가 회장 아들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부터다. 후반부에 이르러서 대반전을 일으킨 영광의 주인공인 것. 시청자들의 시선이 모두 풍호에게 집중됐을 정도.
안세하는 최근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촬영이 끝나자마자 효자손은 손에서 놨어요.(웃음) 회장 아들이란 사실이 밝혀진 후 정말 짜릿했죠. 많은 사람들이 회장 아들을 지성준이라고 예상했잖아요. 저도 일주일 전에 알았어요. 촬영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회장 아들이 김풍호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놀랐는데 신동미 선배가 ‘대본 보기 전까지 절대 믿지 않겠어’라고 하셨죠.(웃음) 풍호가 회장 아들이니까 멋있게 보인다며 촬영장이 발칵 뒤집어졌어요”라고 말하며 배시시 웃었다. 그는 짜릿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배우라는 사실에 감사했고, 연기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털어놨다.
안세하가 표현하는 김풍호는 마치 실제 존재하는 인물인 듯 화면에서 살아 날뛰었다.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마치 본인의 실제 성격인 듯 자연스러워서 연기를 하는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안세하는 “저는 제 연기를 보면 손발이 오그라들어요”라며 “본방송 이후 모니터를 하며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자신을 향한 칭찬에 손사래를 쳤다.
안세하는 지난 2011년 연극 ‘뉴보잉보잉 1탄’으로 연기를 시작했다. 가수를 준비하다 한 선배의 권유로 연기를 시작하게 됐다고. 이후 ‘보고 싶습니다’ ‘두근두근’ ‘국화꽃향기’ ‘올슉업’ 등 다수의 작품을 통해 관객들과 호흡해왔다. 공연을 하면서 영화 ‘소원’ ‘밤의 여왕’ 등과 드라마 ‘트윅스’ ‘미래의 선택’ ‘신의 선물’ ‘유혹’ ‘라스타’ ‘용팔이’ ‘그녀는 예뻤다’까지 쉬지 않고 출연했다. 하지만 모두 주연을 빛내는 조연이었다. 아무리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는 말이 있더라도 배우의 본심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극을 이끄는 주연을 맡아보는 게 아닐까.
안세하는 고개를 저었다. “주연을 맡고 싶다는 생각은 0%”라며 “지금처럼 제가 맡는 역할이 대본에서 안 보일 수 있죠. 하지만 그걸 살려내는 게 제 역할이에요. 누군가가 제게 ‘그런 느낌을 살렸어?’라고 말해주면 행복할 것 같아요. 주연은 일단, 살 좀 빼고.(웃음) 마흔 넘어서, 잘 생겨지면 해보고 싶네요”라고 말했다.
그의 좌우명은 ‘부모님을 위해’다. 아들에 관련된 모든 기사를 검색해보고, 댓글까지 살피는 어머니 아버지에게 상처를 드리고 싶지 않다는 것. “휴대전화 배경화면을 부모님 사진으로 해놨어요. 나태해질 때마다 들여다보는데 나중에는 저를 위해 살겠지만 지금은 부모님을 위해 살고 싶어요.”
코믹한 모습보다 진지하고 부드러운 성격이었지만 어딘가 강한 정신력으로 무장된 듯 보였다. 그리고 그런 점이 그를 배우로서 살게 한 힘의 원천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정말 양아치 같은, 센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제 안에 분명이 그런 면이 있을 것 같아서요. 예전에 ‘네 멋대로 해라’를 보고 정말 감동 받았었거든요. 제 연기의 끝은 멜로입니다. 뜨겁게 사랑하고 싶어요(웃음)”/ purplish@osen.co.kr
[사진]백승철 기자 bai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