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12] 매너도 챔프! 한국 우승 샴페인 사양한 이유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11.22 06: 00

한껏 분위기를 낼 법도 했지만 대표팀 선수들은 차분했다. 절제된 세리모니로 우승을 즐겼다. 주최 측에서 준비한 우승 세리모니도 정중하게 사양했다. 실력은 물론 주변 상황을 생각한 매너까지 ‘세계 제일’이었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야구 대표팀은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5 WBSC 프리미어12’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투·타의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초반부터 경기를 잘 풀어나간 끝에 8-0으로 이기고 대회 정상에 올랐다. 예선을 B조 3위로 통과해 8강에서 쿠바, 4강에서 일본을 꺾은 대표팀은 결승전에서 미국에 설욕전을 펼치며 프리미어12 초대 대회 우승팀으로 역사에 남았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불참으로 대회 수준이 처음 계획했던 것보다는 떨어진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도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 랭킹 1~12위 팀의 진검승부에서 꼭대기에 섰다는 것은 자축할 만한 일이다. 그런데 대표팀은 우승이 확정된 후 비교적 차분하게 정상 등극을 즐겼다.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 나서는 선수들이 천천히 그라운드로 향했다. ‘전력 질주’를 하는 한국시리즈 풍경과도 차이가 났다.

이유가 있었다. 이미 경기 전 선수단 내에서 “대회 우승을 하더라도 차분하게 세리머니를 하자”라는 약속이 있었다. 일본은 당초 “한국이 우승하면 도쿄돔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을지도 모른다”라며 잔뜩 긴장해 있었다. 물론 대회 우승팀의 특권으로 그런 세리머니도 가능했다. 그러나 주최국 일본이 탈락한 상황에서 일본 팬들을 자극하는 행동을 굳이 할 필요는 없다는 게 선수들의 생각이었다. 도쿄돔을 찾은 일본 팬과 관계자들에게 예의를 차린 것이다. 이는 끝까지 최선을 다한 미국 대표팀에 대한 예의이기도 했다.
두 번째로는 최근 국제 정세도 감안이 됐다. KBO(한국야구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최근 파리 테러로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 이번 대회와 큰 연관이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아직은 전 세계적인 추도 기간이지 않은가”라며 이러한 점도 고려가 됐음을 언급했다. 당초 WBSC 측에서는 시상식 때 ‘샴페인 파티’를 예상하고 실제 샴페인까지 구매해 준비를 했다. 그러나 대표팀은 이를 정중히 거부하고 조용한 세리머니를 택했다.
세 번째로는 한국 야구의 위상이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레식(WBC),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세계 야구판에서 ‘최강국’ 대열에 속하지 못했다. 그 당시에는 호성적과 우승이 기적 같은 일이었고 이에 기분을 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한국은 언제든지 국제대회 정상에 도전할 수 있는 팀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우승했다고 과한 세리머니를 펼치는 것 자체가 우리의 위상을 깎아내리는 일이 될 수 있었다. 그 반대의 길을 택함으로써 정상권 팀의 자부심을 보여준 것이다. /skullboy@osen.co.kr
[사진] 도쿄돔=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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