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쌀함을 넘어 본격 추위가 시작되고 있는 11월. 옆구리가 시려오는 계절이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1월 극장가는 주인공의 연애세포가 박멸한 대신 영화의 메시지에 충실, 카타르시스와 감동으로 꽉 채웠다.
오컬트 영화 ‘검은 사제들’은 애초에 장르의 특성상 연애가 끼어들 자리가 없다. 스토리의 흐름보다는 두 사제가 위험에 직면한 소녀를 구하기 위해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있기 때문.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구마예식. 이를 통해 신학교의 문제아 최부제(강동원 분)가 과거의 트라우마를 벗고 성장할 수 있을지가, 악령에 쓰인 소녀 영신(박소담 분)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다.
‘내부자들’은 남성이 주로 등장하며 여성은 주로 피해자로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는 애초에 동등한 위치의 남녀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 것. 대신에 정치깡패 안상구(이병헌 분), 검사 우장훈(조승우 분),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 분)가 펼치는 싸움의 결과와 대한민국 권력의 이면이 밝혀진 후 선사하는 카타르시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싸움의 목적에도 오로지 자신의 야망과 복수심밖엔 없다.
이보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와 ‘도리화가’ 역시 연애보다는 주인공의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의 주인공 도라희(박보영 분)는 수습기자로 스포츠 신문의 연예부에 입사, 진격의 부장 하재관(정재영 분)으로부터 연신 구박을 당한다. 도라희에게 다소 갑작스러운 러브라인이 형성되긴 하지만 전개상 중요한 에피소드는 아니다. 오히려 하는 일마다 사고를 치는 사회초년생 도라희가 연예부에서 버틸 수 있을지, 진정한 기자로 거듭나게 될지가 관전 포인트라 하겠다.
‘도리화가’는 조선 후기 실존했던 인물과 장소,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을 바탕으로 하기에 더욱 조심스럽다. 이 영화는 1867년 여자는 판소리를 할 수 없었던 시대, 운명을 거슬러 소리의 꿈을 꾸었던 조선 최초의 여류소리꾼 진채선(배수지 분)과 그녀를 키워낸 스승 신재효(류승룡 분)의 숨겨진 이야기를 그렸다. 역사가 스포일러라는 말처럼 진채선이 판소리의 금기를 깨고 자신의 꿈을 이룬다는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으니,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극복해내고 감동을 선사할지가 이 영화의 관전 포인트다.
한편 12월에도 일제강점기, 더 이상 총을 들지 않으려는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식 분)과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둘러싼 이야기를 다룬 ‘대호’, 히말라야 등반 중 생을 마감한 동료의 시신을 찾기 위해 기록도, 명예도, 보상도 없는 목숨 건 여정을 떠나는 엄홍길 대장과 휴먼 원정대의 가슴 뜨거운 도전을 그린 ‘히말라야’가 개봉해 관객들은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감상할 수 있게 됐다. / besodam@osen.co.kr
[사진] '검은 사제들', '내부자들', '도리화가',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 포스터(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