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의 이방원 연기, 미쳤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천호진, 김명민 등 쟁쟁한 선배 연기자들 사이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연기력으로 역시 ‘충무로 대세’다운 면모를 뽐낸 것.
이러한 유아인의 묵직한 존재감은 지난 24일 방송된 SBS 창사 25주년 특별기획 ‘육룡이 나르샤’ 16회에서 폭발했다. 홍인방(전노민 분)의 계략을 알아채기 위해 노력하는 것부터 이를 막기 위한 부인 민다경(공승연 분)과의 거래, 해동갑족에 대한 협박까지 펼치며 60분 동안 극의 전개를 휘어잡은 것.
이날 이성계는 홍인방의 계략으로 역모를 꾀했다는 죄를 뒤집어쓰게 됐다. 이에 이방원은 이전에 홍인방이 자신과 그가 닮았다고 말한 것을 떠올리며 홍인방의 생각을 읽어냈다. 실제로 홍인방이라는 인물에 빙의한 듯 분노한 표정으로 “나 홍인방이야. 변절자라는 악명을 뒤집어쓰고 살아. 700년 동안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내가 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사대부들을 배신하고 변절자라는 악명을 뒤집어쓰고 견뎌온 이유다”라고 말하는 유아인의 모습에 소름이 끼칠 정도.
홍인방의 생각을 읽어낸 뒤 바로 이방원으로 돌아오는 모습 역시 인상적이었다. 금방이라도 전쟁을 저지를 것처럼 악에 바친 표정을 짓던 것과 좀 전과 달리, 한숨을 한 번 내뱉더니 금세 해맑은 소년 이방원으로 돌아온 것.
그의 활약은 민다경과의 두뇌 대결에서도 이어졌다. 이방원은 해동갑족이 생존을 위해 이성계를 배신할 예정이라는 것을 알고 민다경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오늘 장인어른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알려 달라. 저와 저희 가문의 가장 큰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말한 것. 그럼에도 민다경이 고민하자 이방원은 자신이 가진 패를 모두 밝혔고, 결국 민다경도 그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으며, 거래를 성사시켰다. 이 역시도 민다경이 되어 생각한 이방원의 지략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마침내 해동갑족을 협박한 홍인방의 제안을 간파한 이방원은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다시 한 번 나섰다. 이번엔 철저하게 이방원이 되어 자신이라면 마땅히 할 일을 실행한 것. 분이에게 화약이 들어있는 상자와 돌이 들어있는 상자 중 하나를 가져다달라고 부탁한 뒤, 이성계의 사병집단인 가별초를 동원해 해동갑족을 찾아갔다.
화약을 꺼내 보인 이방원은 “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이 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나가려는 자가 있거든 즉시 목을 베어라”라고 지시한 뒤,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700년 동안 역사를 방관한 해동갑족에 대해 날카롭게 비난하며 홍인방, 길태미(박혁권 분), 이인겸(최종원 분)을 탄핵하는데 동의하라고 협박했다. ‘파도는 더 큰 파도에 꺾인다’라고 말했던 스승 정도전(김명민 분)의 생각과 통한 것.
이처럼 유아인은 빛나는 연기력과 뛰어난 존재감으로 자신만의 이방원 캐릭터를 완벽하게 만들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사극에서 수없이 다뤄졌던 인물이지만, 그 누구와도 똑같지 않은 유아인표 이방원을 창조해낸 것. 앞으로 전개가 진행될수록 유아인과 이방원의 활약 역시 더욱 커질 예정이다. / jsy901104@osen.co.kr
[사진] SBS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