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승우는 대중들에게 연기 잘하는, 일명 ‘믿고 보는 배우’로 통한다. 어떤 캐릭터라도 자기화 시킬 줄 아는 영민함과 연기 호흡을 타고난 듯 하지만, 실제 조승우는 자신에게 늘 채찍질을 하는 노력파 배우로 유명하다. 스태프보다 먼저 연습실에 나와서는 불평 불만 없이 연습에 매진할 뿐만 아니라 극의 완성도를 위해 늘 의견 제시와 수정을 반복하며 열의를 뿜어낸다.
영화나 드라마 속 조승우도 대단하지만, 그의 진가는 뮤지컬 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JYJ 김준수와 함께 티켓파워 킹으로 손꼽히는 조승우를 향한 뮤지컬계의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 건 이 때문이다. 현재 공연 중인 뮤지컬 ‘베르테르’ 역시 마찬가지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창작 뮤지컬 ‘베르테르’는 2000년 초연된 이래 총 12차례의 재공연을 거듭, 25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올해 15주년 공연에는 조승우, 엄기준, 규현이 베르테르 역을 맡아 연기하고 있다. 2002년 공연 이후 다시 베르테르를 맡게 된 조승우는 13년 전보다 더욱 뜨겁고 깊어진 감성 연기로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사실 이 공연은 롯데를 향한 베르테르의 사랑을 배우가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지가 흥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객들이 사랑 앞에 괴로워하는 두 사람의 감정을 절절히 이해하고 공감을 해야 비로소 빛이 나는 작품인 것. 자칫 잘못했다가는 행복한 가정을 망치고 불륜을 정당화시키는 인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베르테르’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한 뮤지컬이 되기도, 불쾌한 기분을 안겨주는 뮤지컬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조승우의 베르테르는 이런 우려가 기우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1막 초반 롯데를 만나 사랑에 빠지는 장면들은 맑고 순수해 웃음을 절로 머금게 만들고, 1박 후반과 2막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슬퍼하고 고뇌하는 모습에서는 연민이 느껴진다. 분명 무대라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베르테르와 롯데 사이를 잇고 있는 감정들이 커다란 파도처럼 밀려와 숨을 죽이고 극에 빠져들게 만든다. 마치 관객이 술집의 오르카가 되어 베르테르의 이야기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들어주고 있는 느낌이다.
또 롯데 역을 맡고 있는 전미도와는 기대 이상의 연기 호흡을 보여주고 있다. 조승우와 전미도는 ‘닥터 지바고’, ‘맨오브라만차’에 이어 벌써 세 번째 호흡을 맞추고 있는 만큼 눈빛만 봐도 심장을 꿰뚫는 듯 안정적인 연기로 시선을 끌고 있다. 특히 두 사람 모두 손끝으로도 연기한다고 할 정도로 디테일하고 섬세한 연기가 일품인데, 이 ‘베르테르’는 두 사람의 강점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베르테르는 알려진 바대로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극은 쓰러지는 해바라기를 통해 베르테르의 죽음을 암시한다. 지난 시즌부터 연출된 이 해바라기 신은 관객들에게 큰 여운을 남기는 명장면으로 손꼽히고 있다. 또한 전체적으로 따뜻한 색감의 무대와 서정적인 음악은 이 작품이 가진 애잔한 정서를 더욱 부각시킨다. ‘하룻밤이 천년’, ‘발길을 뗄 수 없으면’, ‘우리는 친구’ 등 한 번 들어도 바로 입으로 흥얼거리게 되는 선율은 ‘베르테르’가 인기 뮤지컬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조승우의 설득력 강한 감성 폭발 연기가 보고 싶다면 오는 2016년 1월 10일까지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을 찾으면 된다. 조승우 외에도 엄기준, 규현, 전미도, 이지혜, 이상현, 문종원 등이 출연한다. /parkj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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