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해선 '잘 되는' MBC 예능이 유독 '목요병'에 시달린다. 직장인들이 월요일을 두려워하듯, 목요일 밤에 방송되는 MBC의 예능 프로그램이 늘 고전을 면치 못한다는 얘기다. 기대 속에 출발한 '경찰청 사람들 2015'가 6개월 만에 폐지됐고 앞서 '무릎팍도사' '화수분' '별바라기' '헬로이방인' ' 띠동갑내기 과외하기' 등이 낮은 시청률로 접은 바 있다. 이로 인해 후속으로 전파를 타게 된 새 예능 '위대한 유산'이 목요일의 저주를 풀 수 있을지 궁금하다.
26일 오후 서울 상암동의 한 식당에서 첫 방송을 앞두고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이날 MBC 장형원 콘텐츠제작1부장, 이경용 CP, 안소연PD, 박영미PD, 김명정 작가가 참석해 프로그램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장형원 부장은 “’위대한 유산’은 예능과 교양이 섞인 프로그램”이라며 “초반에 빵 터지는 재미가 부족하더라도 갈수록 재미난 요소가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다. 이어 이경용 CP는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시청률이 4%대만 안 나왔으면 좋겠다.(웃음) 5% 이상 나와서 갈수록 쭉쭉 올라가길 바란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위대한 유산'과 동시간대 방송되는 KBS 2TV '해피투게더3', SBS '자기야 백년손님'과 시청률 대결을 벌이게 됐다. 이 프로그램이 MBC 목요일 오후 11시대 '흑역사'를 멈출 수 있을지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이 CP는 ‘정규편성이 된 과정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파일럿 당시 TNMS 기준으로 9.0%의 전국 시청률이 나왔다. 편성국에서 SNS의 화제성을 분석했는데 대부분 호평이었다. 시청자들이 '부모님께 전화를 돌려야겠다'는 반응이 나와서 저희의 기획의도가 반영된 것 같다"며 "편성을 정하는 과정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앞서 편성된 '능력자들'은 스튜디오 예능이라서 바로 된 것이고 우리는 ENG라서 조금 늦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덕후의 삶을 다루며 올 추석 '위대한 유산'과 함께 파일럿으로 방송됐던 '능력자들'은 지난달 먼저 정규 편성됐다. '위대한 유산' 측에 따르면, 연예인 자녀를 두고도 계속 일을 하는 부모님을 찾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더불어 부모님의 직업이 공개되거나 혹여나 자식의 연예 활동에 피해가 갈까 출연을 거부한 이들도 많았다. 김 작가는 "10명 중 6명은 출연을 거부했다"고도 비화를 털어놨다.
'위대한 유산'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일을 하면서 서로 이해하는 과정을 담는 가족 예능프로그램이다. '부모에게 인생의 결정적 매뉴얼을 물려받는다면'이라는 기획의도로 출발, 파일럿 방송시 시청률과 화제성 면에서 좋은 평가를 얻어 정규 편성됐다.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고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생생한 체험과 리얼한 앵글로 담아내겠다는 의지다.
이어 제작진은 ‘예능이냐 교양이냐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질문에 “본사의 제작이라면 예능 본부가 담당했을 텐데 외주 제작사에서 제작을 해서 파일럿 방송됐기 때문에 콘텐츠 부서에서 담당하게 됐다”며 “예능인데 왜 교양PD가 맡았냐는 의문이 들 수 있지만 두 분야가 합쳐져서 시너지 효과가 들 수 있다고 본다”고 예상했다.
이날 오후 첫 방송되는 ‘위대한 유산’에는 영화계의 살아있는 거장 임권택 감독과 배우 권현상 부자의 일상이 전파를 탄다. 권현상은 2008년 데뷔한 후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다. 데뷔한 지 7년 만에 아버지와 예능에 동반 출연, 작품 속 모습이 아닌 아들 임동재의 모습을 보여준다. 더불어 임 감독의 진솔한 면모를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 작가는 "권현상 씨가 워낙 아버지의 덕을 보려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성까지 바꾼 것이다. 단언컨대 앞으로도 그가 아버지의 작품에 출연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예능에 출연해 혹여나 '금수저 논란'에 휩싸인다든지 사람들의 오해를 받진 않을지 걱정하더라. 하지만 저희가 설득을 했고, 그도 아버지와 언제까지 함께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과 우려에 어렵게 출연을 결심했다"고 했다.
제작진은 "이들 부자가 보여줄 케미가 가장 기대된다"고 방송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유명 영화감독인 아버지 임권택의 후광을 벗어나기 위해 개명하여 활동 중인 권현상은 아버지와의 동반 출연에 염려했지만, 앞으로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깨닫고 고민 끝에 출연을 결심했다는 전언이다.
앞서 파일럿 당시, 에이핑크 보미가 잔잔한 감동과 웃음을 선사한 바 있는데, 정규 편성에서는 AOA 찬미가 합류하게 됐다. 찬미의 어머니는 경상도 구미에서 16년째 미용실을 운영하는 원장님이다. 찬미는 어머니의 미용실을 놀이터 삼아 자라난 것으로 전해진다.
CP는 "찬미의 어머니가 42살이다. 딸과 나이 차이가 별로 안나서 마치 자매처럼 보이기도 한다. 딸이 일을 할 때 잔소리를 계속하지만 뭔가 케미가 좋았다. 두 사람 사이에 재미있을 에피소드가 많다"고 덧붙였다.
또 강지섭의 부자에 대해 "그는 아버지의 직업에 대해 숨기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아버님은 누가 봐도 장인이시다. 아들만 그 점을 모르고 있다. 아버님은 평소 말이 없으시다가도 중국집 메뉴판을 자동으로 읊을 정도로 대단하시다. 이들의 일상이 잔잔한 재미를 줄 것 같다. 저희 프로그램에 막장 가족은 없다. 파일럿에서 기승전결이 있었지만 레귤러로 들어왔으니 초반에 가족을 소개하고 사연들이 풀어지면서 긴 호흡으로 갈 것이다. 우리가 예상치 못했던 상황들이 좀 더 재미있게 담길 것"이라고 했다. 정규 방송에선 배우 강지섭과 아버지, 감독 임권택과 배우 권현상, AOA 찬미와 어머니가 출연한다.
이 CP는 "요즘 사는 게 너무 힘들고 피곤하니까 시청자들이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을 원하는 것 같다. 백종원, 김영만 선생님이 '괜찮아요'를 얘기해준다. 요즘은 아버지대로, 자식대로 힘들다. 물론 교양, 다큐 같은 느낌은 있지만 예능이다. 두 분야를 적절히 섞인 볼 만한 예능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첫 방송에서 출연하는 임권택 권현상 부자, 찬미 모녀, 강지섭 부자가 고정 게스트는 아니다. 새로운 게스트들이 차츰 투입되며 방송될 예정. "저희는 출연진이 언제 바뀔지 모르겠다. 진행되면서 봐야 알 것 같다. 시사를 했지만 어떻게 될지 감이 안 온다. 열쇠는 출연자들이 가지고 있다"고 예상했다.
이어 장 부장은 “교양 PD들이 활로를 찾기 위해 예능에 접근했다기 보다 예능의 영역을 확장해서 교양과 맞닿은 것이다. 예능에서 놓치는 부분이 분명이 있다. 그런 부분을 저희가 찾아서 방송하면 시너지 효과를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정체성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현실을 담은 예능이란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오늘 오후 11시 10분 첫 방송./ purplish@osen.co.kr
[사진]MBC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