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저께TV] '계약의 사내' 최명길, 단막극을 영화로 만든 클래스
OSEN 박꽃님 기자
발행 2015.11.29 06: 57

배우 최명길이 단막극에 도전했다. 데뷔 35년 만에 처음으로 출연한 단막극 안에서 그는 오랜 경력이 바탕이 된 남다른 연기내공을 뽐냈다. 절제된 말투와 서늘한 눈빛, 온화한 듯 보이지만 속내를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극을 지배한 그는 역시 대체 불가의 명품배우였다.
지난 28일 오후 방송된 KBS 2TV 드라마스페셜 2015 시즌3 마지막 작품 ‘계약의 사내’(연출 임세준, 극본 임예진)에서 최명길은 정인요양원의 수간호사 성수영 역을 맡았다. 요양원의 모두가 평화롭고 안전하며 행복하길 바라는 그에게 있어 행복을 위한 최선의 방법은 바로 통제와 규칙이다. 여기에 반기를 드는 구성원이 생기는 건 참을 수 없는, 부조리한 감시로 가득 찬 사회에 가장 잘 진화한 사람이기도 하다.
이런 그의 앞에 새로운 환자 최도석(오의식 분)이 나타난다. 입소와 동시에 요양원의 기괴한 평화를 불쾌하게 느낀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며 트러블을 일으킨다. 요양원 분위기를 헤치는 그가 수영의 마음에 들리는 만무하고, 수영은 미화원 진성(오정세 분)에게 도석의 핸드폰을 가져다달라고 청한다. 본인이 동의했다는 말과 달리 이건 수영이 도석을 조종해 요양원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작전 중 하나였다.

그럼에도 도석이 요양원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며 “여기 와서 더 불안해졌다.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느냐”라고 반기를 들자 수영은 자해를 한 뒤 그 죄를 도석에게 뒤집어씌운 후 가둬버린다. 늘 인자하고 온화한 얼굴로 환자들을 대하던 수영이 집단을 통제하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한 일면을 가지고 있음을 확연히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이 과정에서 최명길은 미소를 짓고 있음에도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눈빛과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로 화면을 장악했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우아함 속에서도 생각을 알 수 없는 눈빛과 서늘한 기운을 내 뿜었는데, 특히 그 모습이 빛을 발한 건 진성과 함께한 엘리베이터 신에서였다. 약을 구하기 위해 요양원을 나선 수영은 진성과 함께했다. 그러다 두 사람은 우연히 엘리베이터 안에 갇히게 됐고, 진성은 그에게 “그렇게까지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한편 진성은 회사의 명령으로 수영을 밀착감시하기 위해 미화원으로 위장 취업한 감시원으로, 그저 남들을 감시하고 회사에 보고하는 것이 일상인 무미건조한 삶을 살고 있었으나 수영을 관찰하며 감시와 통제라는 것에 의문을 갖게 됐다.
이런 그에게 수영은 중학교 시절 개구리 해부를 했던 경험을 말했다. 자신이 배를 가른 개구리가 마취에서 깨어나 펄떡이던 모습, 그리고 배가 열린 줄도 모르고 먹이를 주워 먹다 양 손에 먹이를 쥔 채 죽어버린 개구리 얘기를 태연한 얼굴로 얘기한 수영은 자신이 돌보고 있는 환자들을 그 개구리에 비유했다.
즉,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현실 속에서 환자들이 참담함을 깨달을 수 없도록 자신이 그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것에 대한 확고한 정당성을 품고 살아가는 인물이었던 것이다.
스스로의 행동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가진 그가 환자의 행복을 위한 전제 앞에서 죄책감을 느낄 리 만무했다. 수영이 요양원을 비운 사이, 갇혀있던 도석은 잠시 방을 탈출해 환자들의 정보가 적혀 있는 파일을 발견하게 되고, 퇴원 결정이 내려진지 오래인 석기(오혜진 분)가 수영의 서류 조작으로 퇴원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이 사실을 전해 받은 석기는 수영에게 퇴원을 요구했지만 이는 곧 죽음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수영은 죽어가는 석기의 옆에서 책을 읽으며 “여기서 다 같이 참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다. 아니었다니 유감이다”라는 말을 태연한 얼굴로 내뱉으며 그의 죽음을 지켜봤다.
이렇게 ‘계약의 사내’에서 최명길은 시종일관 속내를 알 수 없는 수영을 연기하며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통제 사회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부조리에 대한 의심은커녕, 절대적인 신념으로 가득 차 환자들을 조종하는 그의 모습에선 그동안 느낄 수 없었던 섬뜩함마저 풍겨왔다. 복잡다단한 수영이란 캐릭터를 완벽히 구현해 낸 연기 내공과 넓은 연기 스펙트럼으로 단막극을 한 편의 영화로 만든 배우 최명길. 그의 ‘클래스’를 다시 한 번 여실히 증명한 시간이었다. / nim0821@osen.co.kr
[사진] '계약의 사내‘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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