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했다. 영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와 소설 ‘1984’속 빅브라더를 연상시키듯 ‘계약의 사내’는 감시 사회의 상징적 모습들을 여실히 보여주며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섬뜩한 인상을 남겼다.
지난 28일 오후 방송된 KBS 2TV 드라마스페셜 2015 시즌3 마지막 작품 ‘계약의 사내’(연출 임세준, 극본 임예진)에서는 간호사 수영(최명길 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는 지령을 받고 위장 잠입한 감시원 진성(오정세 분)이 요양원의 수상한 평화 속에 감춰진 진실을 파헤치는 모습이 그려졌다.
진성은 회사에서 내려온 지령대로 누군가를 감시하고 기록하고 보고하는 일 외에는 별다른 사건 없는 무미건조한 삶을 사는 인물. 이런 그가 수영의 감시를 위해 요양원에 잠입했다. 요양원을 청소하며 수영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기 시작한 진성은 매일 밤 회사에 보고를 하고, 수영은 요양원에 새로 들어와 첫날부터 문제를 일으킨 도석(오의식 분)의 휴대폰을 가져다달라고 진성에게 부탁했다.
본인이 동의했다는 말과 달리 이건 수영이 도석을 조종해 요양원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고, 그럼에도 도석이 요양원 사람들과 섞이지 못하며 “여기 와서 더 불안해졌다.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느냐”라고 반기를 드는 그에게 극단적인 방법을 쓴다. 수영은 자해를 한 뒤 그 죄를 도석에게 뒤집어씌우고, 이에 도석은 꼼짝없이 방에 갇히고 만다.
수영은 환자의 행복을 명분으로 집단을 통제하고 있었고, 집단 역시 그의 통제에 위축돼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성은 약을 구하러 외출하는 수영을 따라나섰다. 두 사람은 우연히 엘리베이터 안에 함께 갇히게 됐고, 진성은 그에게 “그렇게까지 해서 얻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의 질문에 수영은 중학교 시절 개구리 해부를 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며 마취의 중요성, 바로 자신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현실 속에 환자들이 참담함을 깨달을 수 없도록 그들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이야기했다.
이런 그를 바라보며 진성은 회사에 “효율적 관리를 위한 정당성이 확보되지도 않으며 자신이 저지른 비인간적인 행위에 일말의 가책도 없음. 회사 차원의 조속한 조치를 요함”이라는 보고를 하게 되고, 회사는 그의 보고에 주관을 배제한 중립적 보고를 요한다. 이에 진성은 사적인 가치관이 개입되지 않은 평가를 내리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고, 회사로부터 경고를 받게 된다.
한편 갇혀있던 도석은 수영이 요양원을 비운 사이 잠시 방을 탈출해 환자들의 정보가 적힌 파일을 보게 되고, 퇴원 결정이 내려진지 오래인 석기(오혜진 분)의 파일을 조작해 퇴원시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진성에게 전했다. 한편 도석에게 이 사실을 전해 받은 석기는 수영에게 퇴원을 요구했고, “여기서 다 같이 참 행복하다고 생각했었다. 아니었다니 유감이다”라는 말과 함께 석기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이 모든 사실을 지켜보고 있던 진성은 다음 날 수영을 찾아가 따졌지만 이내 그가 수영을 내내 감시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위험에 처한 그는 모두를 피해 도망치려 애썼지만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없는 길은 없었고, 이런 진성의 앞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의 무리가 나타났다. 그들 사이를 헤치고 도망치려 애써봤지만 도망갈 곳은 아무 데에도 없었다.
진성은 모두의 앞에서 수영의 악랄한 모습을 폭로했다. 하지만 요양원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진성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그의 말을 믿지 않았고, 수영은 “내가 뭐랬어요. 이곳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같은 건 없을 거라고 했죠”라며 차갑게 얘기했다. 중간보고 누락과 감시자 신분 노출 등으로 밀착관찰에 실패한 진성은 회사로 돌아갔고, 정보원 자격이 박탈됐다.
감시 사회와 조종되고 있는 사람들, 그 속에서 사람들을 감시하던 진성이 뒤늦게 현실을 깨달았지만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조종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현실을 마주보려 하지 않았다. 이미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행복과 편안함에 세뇌당하고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 사회, 이 안에서 반란을 꿈꿨던 진성은 오히려 감시자라는 자격마저 빼앗긴 채 그가 감시했던 이들과 다름없는 피감시자가 되고 만다.
진성은 ‘1984’의 윈스턴처럼 남들보다 더욱 깊게 빅브라더를 찬양하게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진성의 모습에서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편리하게 변하고 있는 사회, 그 기술 발전 속에서 우리를 감시할 수 있는 도구 역시 소형화되고 간편화되어 왔다. 이런 사회 속에서 우린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 감시 사회의 현실과 그 안의 사람들을 통해 미래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 ‘계약의 사내’. 배우들의 열연과 의미 있는 메시지를 통해 KBS 2TV 드라마스페셜 2015의 유종의 미를 거두게 만든 명품 단막극의 탄생이었다. / nim0821@osen.co.kr
[사진] '계약의 사내‘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