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제시는 화려한 가면으로도 존재감을 싹 감출 수는 없었다.
사실 웬만해서는 복면가수들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를 때 긴가민가 헷갈리게 만들어 판단을 보류하게 만들곤 하는데, 제시는 한 구절 입을 떼기 무섭게 곧장 "제시네?"라는 답이 나오게 했다. 연예인 일반인 판정단 모두 그의 목소리를 듣고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작진으로서는 안타까울 노릇이지만, 가수로서는 되레 메리트가 됐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얼굴과 몸을 가리고 숨겨도 자신만의 음색과 제스처, 애드리브 등을 대중이 알고 있다는 얘기니까 뿌듯할 게다. '복면가왕'은 정체를 숨기고 오로지 목소리 하나로 노래 대결을 벌이는 프로그램인데 제시가 그 기획의도를 철저하게 무시한 셈이다.
제시는 지난 29일 오후 방송된 MBC 예능 '일밤-복면가왕'(이하 복면가왕)에서 18대 가왕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세 번째로 무대에 오른 나도 미스코리아 제시는 럭셔리 백작부인과 대결을 했다. 두 사람은 높게 뻗어올라가는 고음을 자랑하며 박미경의 '이브의 경고'를 불렀다. 미스코리아 제시가 중간에 가사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당황하지 않고 끝까지 무대를 이어갔다. 판정단의 투표 결과, 백작부인이 68 대 31표로 37표 차이로 2라운드로 진출했다. 미스코리아는 플라이투더스카이의 'Sea of love'를 부르며 가면을 벗었고 래퍼 제시로 드러났다.
제시는 이날 "어떻게 알았습니까?"라고 반문하며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여 웃음을 선사했다. 그러면서 "가면을 썼는데도 '제시다'라고 해주셔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저만의 색깔이 있다고 봐주셔서 고맙다"며 다시 한 번 출연하고 싶다는 소감을 남겼다.
제시의 매력은 주변의 눈치를 보지 않는 솔직함이다. 생각한 것을 거칠게 내뱉는데도 왠지 밉지가 않다. 가식적으로 칭찬하는 것보다 '디스'를 하는 편이 오히려 보기 좋다는 말이다. 그는 랩, 노래 등 실력을 갖추며 여자 래퍼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올 초 Mnet 예능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1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제시는 지난 2005년에 데뷔를 했지만 10년 가까이 주목받지 못했다. '될 사람은 된다'는 말이 알려주듯 시간이 지날수록, 무대에서 발산하는 넘쳐나는 에너지와 강렬한 랩핑 실력으로 호감을 얻기 시작했다. 아마도 올해가 그녀의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됐을 터다.
제시는 최근 노래 '쎈언니' 를 발표하며 자신의 매력을 그대로 투영하면서 넘치는 자신감을 보였다. 역시 그녀다운 행보다. 하지만 빠르게 변하는 흐름 속에서 언제까지나 '쎈 언니'로 남을 순 없을 것 같다. 기존의 이미지가 아닌 180도 변화도 필요해 보인다. 제시가 능동적이되 자연스럽게 그 중심을 잡아나가길 기대해본다. / purplish@osen.co.kr
[사진]'복면가왕'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