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드라마국에는 ‘사전제작’ 드라마 열풍이 불고 있다. 송중기·송혜교의 ‘태양의 후예’부터 김우빈·수지의 ‘함부로 애틋하게’, 이영애·송승헌의 ‘사임당’, 박해진·김고은의 ‘치즈 인 더 트랩’, 그리고 캐스팅이 한창인 ‘달의 연인’까지 모두 100% 사전 제작 또는 반(半) 사전제작임을 알렸다.
본래 사전 제작 시스템은 한국 드라마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쪽대본, 생방송 촬영과 같은 열악한 조건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촉박한 촬영 스케줄 상 사전 제작이라는 것은 고려해 볼 엄두가 나지 않는 구조였던 것.
이에 대한 불편은 이미 배우들을 통해 여러 번 언급된 바 있다. 특히 이는 인기 드라마일수록 정도가 심해졌다. ‘용팔이’에 출연했던 정웅인은 “촬영을 늦게 시작하는 바람에 스태프들은 취침을 못하고 있다. 촬영가게 되면 미안할 정도. 최악의 촬영 현장이다”라고 밝혔고, 최근 종영한 ‘그녀는 예뻤다’의 황정음 역시 “촬영하면서 2개월 동안 하루에 1시간 정도 밖에 못 잤다. 20시간 이상 푹 자고 싶다”라며 촬영 강행군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오죽하면 쪽대본과 생방송이 없는 촬영은 ‘착한 드라마’라는 인식이 생기기도 했다.
사전 제작 드라마가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이러한 이유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촬영 환경 개선과 더불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시간을 이용해 작품의 퀄리티를 높이고자 함인 것. 실제로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디데이’는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든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난 드라마라는 리얼리티를 살리며 반 사전 제작 드라마의 선례를 남겼다.
또한 작품에 임하는 배우들의 마음가짐도 한결 가볍다. 역시 사전 제작됐던 드라마 ‘라스트’에 출연했던 이범수는 “촬영 후반부에 갈수록 타 드라마처럼 대본이나 시간에 쫓겨서 방송 하루 전에 대본 받아서 퀄리티가 떨어진 환경이 아니라 1주일에 한 부가지고 꼼꼼히 촬영 중이라 가면 갈수록 퀄리티가 좋아지고 있다”며 “앞으로 사전제작 드라마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사임당’으로 10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온 이영애도 마찬가지로 “아내와 엄마 입장에서 사전 제작을 통해서 양질의 작품을 할 수 있고 엄마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사임당'을 통해 드라마 제작 환경이 더 좋아지길 바란다”며 사전 제작 시스템에 대한 반색을 드러냈다.
물론 사전 제작 드라마가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살필 수도, 이를 수용할 수도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하지만 사전 제작의 유행이 열악한 한국 드라마 제작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바람직한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과연 앞서 언급한 작품들이 사전 제작의 유행이 성공적으로 자리잡게 만들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 jsy901104@osen.co.kr
[사진] KBS·SBS 제공(위), OSEN DB(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