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구'에 사투리가 없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네가 가라.하와이"를 "네가 갈래 하와이?"로 바꾼다면. 아마도 '친구'는 전설적인 영화로 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렇듯 영화에서 '그럴듯함'을 살려주는 요소가 사투리다.
영화계의 '사투리 사랑'은 최근에도 끊이지 않고 있다. 송강호, 김윤석 같은 배우들은 '변호인'이나 '극비수사' 등에서 자연스러운 사투리를 구사하며 영화의 현실감을 더 높여줬다. 주인공들이 실존 인물에 기반한 캐릭터였다는 점에서 생생한 느낌은 더했다.
최근 개봉했던 영화 '그놈이다'에서 주원은 살인자에게 잔인하게 죽음을 당한 여동생의 복수를 꿈꾸는 시골 청년 설정을 위해 거친 경상도 사투리를 썼다. 인터뷰 및 기자간담회 등에 따르면 주원은 제작진의 우려에도 불구, 사투리 공부에 적극적으로 매진해 완벽한 사투리를 선보였고, 이는 관객들로부터 좋은 평을 받았다.
최근 개봉한 영화들에서도 능숙하게 사투리를 선보인 배우들의 모습이 눈길을 끈다. 영화 '내부자들'의 이병헌, '도리화가'의 배수지가 대표적이다.
이병헌은 '내부자들'에서 정치 깡패 안상구 역을 맡아 강렬한 변신을 선보였다. 앞서 할리우드 영화나 누아르 영화에서 냉혹한 악당이나 조직폭력배 등의 캐릭터를 했었던 이병헌이지만, 안상구처럼 무식함이 뚝뚝 떨어지는 캐릭터를 맡은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이병헌은 안상구를 연기하며 실제, 전라도 출신이라고 해도 될만큼 능숙한 사투리를 구사한다. "모히토에 가서 몰디브나 한 잔 할까?", "정의? 그렇게 달달한 것이 여적 대한민국에 남아 있당가?" 등의 명대사는 이병헌의 구수한 사투리에 배여 나오며 큰 힘을 발했다. 안상구의 사투리는 깡패인 동시에 인간적이고 순박한 캐릭터의 매력을 더 돋보이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관객들이 주인공에게 깊이 공감하고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이병헌 못지 않게 사투리 연기로 캐릭터를 돋보이게 한 인물이 있으니 '도리화가' 배수지다. 배수지는 극 중 조선 첫 소리꾼을 꿈꾸는 순박한 소녀 진채선을 연기하기 위해 역시나 전라도 사투리를 사용했다. 광주가 고향인 그는 어린 시절 서울에 올라온 탓에 사투리를 많이 잊어버렸고,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기 위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연습을 했다고 알려져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 같은 노력 덕분인지, 배수지의 사투리는 '도리화가'에서 청초하면서도 '순정파'인 진채선 캐릭터를 제대로 살리는 데 일조했다. 영화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평가들이 많지만, 수지가 선보였던 진채선의 캐릭터만큼은 그의 전작 '건축학개론'에 버금갈만큼 매력적이다.
사투리를 잘 할 수 있는 배우는 굉장한 강점을 가진 셈이다. 표준어가 아닌 날 것 그대로의 언어가 때로는 관객들에게 더 큰 감정과 인상을 전달한다. 그런 면에서 영화계의 사투리 사랑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 /eujenej@osen.co.kr
[사진] '내부자들' , '도리화가' 스틸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