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명운동까지 일어날 정도로 큰 화제와 인기를 모았던 태쁘 길태미(박혁권 분)가 결국 이방지(변요한 분)와의 대결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이미 어느 정도는 예상이 되는 승부였지만, 끝까지 카리스마를 잃지 않고 최고의 활약을 보여준 박혁권에게 시청자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박혁권은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 신경수)에서 현 삼한 제일검이자 고려의 권력을 틀어쥔 도당 3인방 중 하나인 길태미를 연기했다. 이인겸(최종원 분)의 오랜 심복으로 출중한 무술 실력을 가진 고수로, 화려한 치장을 하고 장신구를 좋아한다. 촐랑대는 성격이지만 누구보다 잔혹한 면모를 감추고 있다. 별볼 일 없던 검객이 최고의 권력을 거머쥐고 나서는 사돈인 홍인방(전노민 분)과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기 일쑤였다.
길태미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이다. 겉으로는 유약해 보이지만 가끔씩 보여주는 날 선 눈빛이 섬뜩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의 아들 길유(박성훈 분)가 포악한 성격을 드러내며 유생들을 괴롭혔던 것도 길태미의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길태미를 미워하는 시청자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길태미가 나와야 재미가 있다며 그의 분량을 늘려달라고 청하는 이들이 줄을 이었고 ‘태쁘’(길태미는 예쁘다)라는 별명도 생겼다.
길태미의 특징은 진한 눈 화장과 여성스러운 말투인데, 그의 선이 살아 있는 아이라인이 시청자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일으켰다. 짙은 눈 화장과 덥수룩한 수염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박혁권의 우아한 말투가 더해지자 독보적인 캐릭터로 구축이 됐다. 이 때문에 박혁권은 촬영 때마다 1시간 반~2시간에 걸쳐 분장을 해야 한다고 한다. 또 학식이 부족해 빈틈이 너무 많은 길태미는 감정 표현이 많아서 쉽게 속내를 알 수 있는데, 그 때마다 빵빵 터지는 웃음을 선사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무술 실력만큼은 ‘삼한 제일검’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최고를 자랑해 칼을 뽑을 때만큼은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게 했다.
그런 그가 죽음 위기에 빠지자 시청자들은 “죽으면 안돼”라며 구명운동을 벌이기까지 했다. 그 정도로 길태미는 매회 대단한 존재감을 뽐내 왔고, 죽음 역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난 17회 방송에서 죽음의 위기에서도 여유롭게 아이라인을 그리던 길태미는 사람들을 죽인 뒤 아무렇지 않게 국밥을 먹는 등 잔혹한 무사의 모습을 보여 충격을 안겼다. 그리고 18회에서 이방지와의 마지막 대결을 예고해 기대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길태미의 죽음은 이미 예견된 것으로 반전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칼에 상처를 입은 이방지에게 “이전만 못하다”고 비아냥거렸지만, 이것이 끝이었다. 이미 최고의 경지에 오른 이방지는 그에게 “당신 공격 다 보인다”고 말했고, 곧 바람을 가르는 놀라운 실력으로 길태미을 사정없이 베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죽는 순간에도 “약자는 강자에게 짓밟히는 거다. 천년 전에도 천년 후에도 약자는 강자에게 빼앗기는 것이다. 세상 유일한 진리는 강자는 약자를 병탄하고 인탄한다. 이것만이 변하지 않는 진리”라고 소리쳐 이방지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에게도 깊은 여운을 안겼다. 길태미의 말대로 강자가 약자 위에 군림하는 건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탄탄한 연기력의 박혁권과 영민한 ‘육룡이 나르샤’ 제작진이 만들어낸 독보적인 캐릭터 길태미는 이렇게 죽음으로 퇴장을 하게 됐다. 길태미의 죽음을 지켜보던 그의 형 길선미(박혁권 분)가 향후 극 속에 등장 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로 남아 있지만, 극의 큰 재미를 담당했던 길태미의 부재는 아쉬울 수밖에 없고, 이 후유증은 꽤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육룡이 나르샤’는 조선의 기틀을 세운 철혈 군주 이방원을 중심으로 한 여섯 인물의 야망과 성공 스토리를 다룬 팩션 사극이다. /parkjy@osen.co.kr
[사진] ‘육룡이 나르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