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가 귀엽게 나온다는 말은 과연 허언이었다. CG 작업 중 주연 배우 최민식과 제작진이 완성도를 놓고 언쟁을 벌였다는 말 역시 헛소문으로 판명 났다. ‘대호’ 제작사 사나이픽쳐스와 투자사 NEW의 기대치 낮추기 작전에 걸려든 기분까지 들었다.
지리산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뜻에서 산군님으로 불리는 대호는 등장만으로 위압감이 느껴질 만큼 리얼 그 자체였다. 꼬리를 말아 올린 채 느릿느릿 걸을 때는 숙연함과 서늘함이 객석을 장악했고, 자신을 해치려는 인간들을 포효하며 제압할 때는 온 몸에 소름이 돋을 만큼 공포가 밀려왔다. 물리고 뜯겨 사지가 절단 난 일본군들의 처참한 몰골은 다소 통쾌하기까지 했다.
최민식이 성까지 붙여 김대호씨라고 깍듯이 치켜세운 호랑이는 나라를 강점당한 조선이었고, 부성애 강한 포수 천만덕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새끼일 때부터 한쪽 눈을 잃은 외눈박이 설정 역시 주권을 강탈당한 비운의 나라를 상징한 메타포처럼 여겨졌다.
여기에 사고로 아내를 잃고 산속에서 혼자 아들을 키우는 은둔 캐릭터 천만덕과 사악한 인간들 때문에 무리를 잃은 호랑이가 서로 교감하면서도 대립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가 이 영화를 끌고 가는 주 엔진이다. 호랑이가 자신에 이어 비극적 상황을 맞은 천만덕을 처연하게 응시하고 둘이 예기치 않은 일촉즉발 위기를 맞는 극한 상황이 묵직한 서스펜스를 쉼 없이 자아낸다.
대호의 동선과 은신처를 파악하고 있지만 사냥 대신 약초를 캐며 자연에 순응하는 천만덕은 일본군과 동료 포수들의 원망의 대상이다. 조선 호랑이를 잡아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일본군과 팔자를 고치기 위해 이에 가세한 조선 포수들은 폭설이 오기 전 지리산을 헤집고 다니지만 번번이 포획 작전에 실패한다.
‘대호’는 중간 중간 잔상에 남을 만한 명장면과 예상을 깨는 앵글이 나오는데 그중 압권은 엔딩신이다. 천왕봉으로 추측되는 지리산 정상에서 최민식과 호랑이의 마지막 사투가 벌어지는데 올해 본 최고의 엔딩 신으로 꼽힐 만큼 비장미가 넘친다. 호랑이가 천만덕을 닮아가는 건지, 만덕이 대호를 닮은 건지 둘의 묘하게 흡사한 슬픈 눈과 몸부림이 관객의 누선을 자극할 전망이다.
‘신세계’에서 팀플레이를 펼친 최민식 황정민이 설산을 배경으로 한 겨울 대작으로 맞붙은 점도 흥미롭다. 각각 가족과 동료애를 소재로 한 최루성 휴머니즘 영화인데 누가 더 크게 웃을지 궁금하다. 한편, ‘대호’ 측은 최민식의 배역 천만덕이 ‘천만’ 관객을 염원한 트릭성 작명이 아니라고 밝혔다./bskim0129@gmail.com
'대호'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