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0부작 중 10회까지 방송된 tvN 금토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쌍팔년식으로 대본을 주고받고 있어 흥미롭다. 철저하게 우편과 인편을 통해 해당 연기자에게 대본이 건네지다보니 “대본 수령까지 아날로그 방식”이라는 우스개가 나오고 있다.
제작진이 간편한 이메일 전송 대신 번거로운 봉화식 전달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바로 보안 때문이다. 드라마가 반환점을 돌면서 향후 전개될 줄거리의 외부 유출을 최대한 막기 위해 내부 입단속이 한층 강화됐다는 전언이다. 특히 덕선(혜리)을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러브라인이 단속 대상 1호다.
갓 제본된 따끈따끈한 대본은 촬영 현장에서 연기자에게 직접 건네진다. 매니저가 대신 수령해 토스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연기자가 현장에 있을 때는 대면 전달이 원칙이다. 매니저나 스타일리스트에게는 따로 대본을 나눠주지 않고 ‘복사, 스캔 금지’ 원칙을 준수하도록 거듭 당부하고 있다.
촬영 분량이 없어 현장에 올 필요 없는 연기자들은 프로덕션 사무실이 꾸려진 상암동 이안 오피스텔로 찾아가 대본을 받아와야 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이미연 김주혁처럼 우정 출연의 경우엔 발품을 줄여주려고 등기 우편이나 퀵서비스를 통해 대본을 자택으로 배송해주고 있다.
이와 관련 ‘응팔’의 한 제작진은 10일 “현재 15회 촬영이 순조롭게 진행 중인데 시청자들의 만족도를 위해 내부 보안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며 “매니저들에게도 가급적 대본을 읽지 말아달라고 부탁한다”고 말했다. 언론이나 팬들에게 드라마 내용이 일체 새나가지 않도록 원천봉쇄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 매니저는 “캐스팅 단계부터 겹치기 출연이나 광고, 행사 일정으로 녹화 스케줄에 지장을 주지 않겠다고 서약한 후 응팔에 합류할 수 있었다”면서 “가끔 제작진의 입단속이 과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지만 두 자릿수 시청률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될 것도 없다”고 말했다. 15회부터 시간이 3년 점프된다는 추측 기사가 나가는 날이면 ‘빨대’를 색출하느라 현장 분위기가 다소 험악해질 때도 있다는 말도 곁들였다.
935엔터테인먼트 정광성 이사는 “불과 15년 전만 해도 대본 나오는 날이면 여의도 방송국을 돌며 대본을 받아오는 게 매니저의 주 업무였다”면서 “요즘은 이메일과 단체 카톡방으로 모든 걸 해결하지만 가끔 인간미 넘치던 드라마국의 아날로그 정서가 그리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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