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장희진은 SBS 드라마 ‘마을–아치아라의 비밀’(극본 도현정, 연출 이용석, 이하 ‘마을’)을 끝마치자마자 내리 5일 동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끝을 향해 내달릴수록 감정 소모가 많았던 캐릭터를 연기했기 때문에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을 텐데도 장희진은 오히려 생긋 웃으며 “작품을 잘 끝낸 뒤 하는 인터뷰라 재미있고 즐겁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장희진에게 ‘마을’은 특별한 작품이고, 연기했던 김혜진은 소중한 캐릭터였다.
장희진이 ‘마을’에서 맡았던 김혜진은 2년 전 실종된 미술학교 교사로, 육감적이면서도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외모, 처연한 느낌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마을 최고의 권력가인 서창권(정성모 분)의 내연녀로 극에 첫 등장한 김혜진은 서창권의 아내인 윤지숙(신은경 분)과의 난투극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실종돼 사체로 발견된 인물이기 때문에 장희진이 극에 등장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이에 “처음엔 특별출연인 줄 알았다”고 운을 떼자 장희진 역시 “그 정도의 비중이었다. 스태프들도 현장에서 ‘카메오 배우’라고 놀렸다. 일주일에 한 신 찍고 간 적도 있었고, 두 신 이상 연결을 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장희진은 “그런 상황이었기에 처음에는 분량이나 존재감, 이런 부분에서 큰 욕심을 내지 않았다. 연기력으로 인정 받겠다는 욕심도 없었다”며 “하지만 뒤로 갈수록 김혜진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제가 잘해야 극이 흔들리지 않을 테니까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더라”라고 솔직한 생각을 털어놨다.
“사실 고민을 하긴 했다. 전작인 MBC ‘밤을 걷는 선비’(밤선비)가 아니었다면 선택하지 않았을 수 있다. 인물 설명에도 기타로 분류되어 있고, 1~4회까지 대본을 보고 판단을 했을 때 불륜 코드가 기존 했던 것의 연장선에 있어서 ‘이걸 해야 할까’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만족도가 크다.”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 따라 시시각각 분위기를 달리해야 했던 김혜진이라 연기하는 입장으로서 쉽지 않은 부분도 많았다. 앞 뒤의 상황 설명 없이 그저 상상하면서 찍어야 하는 신이 많았다는 것. 그렇기에 장희진은 이용석 PD와 더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을 거듭하곤 했다.
“너무 답답했던 부분은 어떤 의도로 대사를 해야 하는 건지 모를 때였다. 슬픈 건지, 아니면 화가 난 건지, 여러가지 감정들이 좀 불친절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건 알고서 촬영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연기에 묻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계산을 하신 것 같다. 그래서 대사 톤을 좀 애매하게 정했다. 그 덕분에 오히려 몽환적이고 신비스럽고 또 여운이 남는 캐릭터가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면서 장희진은 신은경과 함께 연기했던 감정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특히 15회와 16회에 걸쳐 등장했던 지숙이 혜진의 목을 조르는 장면에 대해 “체력 소모가 정말 많았다. 뭔가 준비할 시간이 많이 없었다. 대사도 많고, 신도 정말 길었다. 게다가 감정을 많이 쏟아내는 신이라 정말 힘들더라. 그래서인지 저에게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그래도 스태프들의 편집 기술이 좋아서 우려했던 것보다는 잘 나왔더라”고 솔직히 고백했다.
또 지숙과 유나(안서현 분)이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을 휴대폰 카메라로 찍고 있는 엔딩 장면은 상황이 주는 안타까움 때문에 애틋함이 더 컸다고. 촬영을 할 때는 너무 금방 찍어서 별 생각을 못했는데, 극의 가장 마지막 장면이다 보니 잔상이 많이 남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리고 장희진은 선배 연기자인 신은경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신은경 선배님의 기를 받아서 시너지 작용을 일으켰던 것 같다. 선배님 몰입하시는 것은 정말 대단하다. 상대 배우가 몰입을 해서 대사나 감정을 전달해주면 저 또한 몰입이 잘 된다. 그런 부분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신은경 선배님 보면서 대단하다고 생각한 게 함께 장난을 치다가 슛 들어가면 바로 돌변해서 연기를 하신다. 저는 아직 그게 안 된다. 김혜진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유지한 편인데, 인물 자체가 슬프다 보니 웃을 일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다.”
동생 소윤 역을 맡은 문근영과 제대로 연기 합을 맞추지 못해 아쉽다고 말한 장희진은 “현장에서 마주칠 때나 회식 자리에서 살짝 얘기를 해본 결과 저랑 성향이 비슷해서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감정이 많더라. 같은 신에서 연기를 하면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 다음에 꼭 함께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느냐고 묻자 장희진은 기다렸다는 듯이 “좀 밝은 것을 해보고 싶다. 코미디도 좋다. 망가지는 역할이나 밝은 기운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물론 ‘마을’ 속 김혜진 같은 이미지도 정말 좋긴 하지만 해봤으니까.(웃음) 제가 늘 극 중에서 짝사랑하는 역할만 했었는데, 이제는 사랑을 받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 늘 ‘나 좀 봐주면 안 되냐’고 하는 역만 했다. 그래서 누가 저를 좋아해주는 역할이었으면 좋겠다.” /parkjy@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