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정은 깊고 따뜻하지만 깊지만 그것을 주로 사나운 방식으로 표출하는 산옥(고두심 분)은 진애(유진 분)와 앙숙과도 같은 사이였다. 이런 엄마를 진애는 늘 지겹게 여기며 탈출하고 싶어 했다. 훈재(이상우 분)를 만나 결혼을 통해 오랫동안 꿈꿔왔던 탈출이 눈앞에 다가온 이때 진애는 엄마의 진짜 속마음을 알게 됐고, 그 진심은 딸을 울리고 말았다.
지난 12일 방송된 KBS 2TV 주말드라마 '부탁해요, 엄마'(극본 윤경아, 연출 이건준)에서는 진애를 향한 숨겨둔 진심이 드러나는 산옥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산옥은 영선(김미숙 분)과 마주했다. 사과를 받고 싶다며 시작부터 돌직구를 던진 산옥은 어린 시절 아팠던 큰 아들을 챙기느라 사랑을 주지 못했던 진애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에 산옥은 자신에게 미처 다 받지 못한 사랑을 시어머니에게라도 듬뿍 받길 바랐다며 그동안 대놓고 진애를 미워했던 영선에게 서운한 마음을 드러냈다. 그의 말에 영선은 친엄마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을 시어머니에게 받아내라는 건 모순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고, 그럼에도 산옥은 진애에게 잘해주지 못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후회의 눈물을 흘렸다.
결국 그의 태도에 영선은 지난 행동을 사과했다. 또한 앞으로 확 달라질 자신은 없지만 시어머니로서 며느리한테 심술부리고 싶을 때마다 산옥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영선에게 산옥은 “사실은 대표님이 많이 부럽다. 우리 진애가 참 존경하고 좋아하는 분이라는 게 제일 부럽다. 엄마를 골라서 태어날 수만 있다면 우리 진애 나 같은 거 쳐다보지도 않았을 거다. 이런 어미한테 어쩌다가 잘못 태어났다”라고 말하며 진애를 부탁했다.
한편 두 사람의 얘기를 엿듣게 된 진애는 산옥에게 속상한 마음을 감추고 원망하듯 그의 행동을 질타했다. 이에 산옥은 “나는 그 아줌마가 심통 안 부리고 너한테 잘해주기라도 하면 큰절을 백 번 천 번도 울릴 수 있다”라며 딸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불사할 각오가 되어있는 절절한 모성애를 드러냈다. 또한 그는 스스로를 죄인이라 칭하며 진애에게 “큰 죄를 졌다. 너한테 죄인이니까 시어머니한테도 죄인이다”라고 말했고, 늘 마주하면 언성이 높아지고 짜증 섞인 대화가 오갔던 엄마가 털어놓는 뜻밖의 진심에 진애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진애의 결혼을 앞두고 산옥은 심난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고약한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이들을 기르며 살림을 책임졌던 그에게 진애의 존재는 분풀이 대상이었다. 이런 과거는 산옥의 마음속에 늘 무거운 짐으로 남아있었고, 그래서 더욱 진애만큼은 자신과 같은 인생을 살지 않고 미처 못 받은 사랑 시어머니에게라도 실컷 받으며 행복해지길 바래왔던 것이었다. 이런 산옥의 바람과는 달리 진애는 결혼 후 훈재의 집으로 들어가 살기로 했다는 얘기를 꺼냈다. 혹독한 시집살이의 늪에 자진 투항하겠다는 딸의 말에 산옥은 불같이 화를 내며 모진 말을 내뱉었고, 그 말은 다시 자신에게 상처가 되어 돌아왔다. “저게 집 떠난다고 하니까 왜 화가 나. 저 가여운 것한테 잘해줘야 하는데 정 떼느라 그런가, 내가 왜 노여워”라고 혼잣말을 하며 남몰래 눈물짓는 그의 모습을 남몰래 지켜 본 진애 역시 눈물을 흘렸다. 이어 진애는 우연히 산옥의 일기장을 발견하게 됐고, 그 안에는 진애를 혼낸 스스로를 나쁜 년이라 부르며 자책하는 산옥의 진심이 담겨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늘 온갖 구박과 야단을 일삼았던 엄마가 한편으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진애는 또 다시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딸에게 바라는 건 오직 한 가지, 자신과 같은 삶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딸은 자꾸만 가시밭길로 향하고, 진심을 이야기하는 것이 서툰 엄마는 걱정스런 마음을 언제나처럼 거친 방법으로 드러내고 만다. 이런 엄마의 말에 딸은 늘 상처받아왔지만 이제는 그 안에 어떤 진심이 숨겨져 있는지 안다. 오랜 시간 묻어왔던 진심을 확인한 딸과 이런 그와 마주하게 될 엄마. 이 모녀가 부디 서로를 마주보며 웃음 지을 일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한편 '부탁해요, 엄마'는 세상에 다시없는 앙숙 모녀를 통해 징글징글하면서도 짠한 모녀간 애증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 nim0821@osen.co.kr
[사진] ‘부탁해요, 엄마’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