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는 우리에게 강렬한 울림을 전한다. 정치와 로맨스가 적절히 녹아 있는 이 드라마는 조선 건국 과정을 다루면서 현재의 이야기까지 건드린다. 6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썩은 정치로 인해 고통 받는 이들은 민초들이며, 국가는 이런 민초들을 위한 안정적인 울타리가 돼야 하고, 울타리를 지키는 건실한 목동을 뽑는 선택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육룡이 나르샤’가 언뜻언뜻 다루는 숨은 이야기다.
‘육룡이 나르샤’는 이방원(유아인 분)을 중심으로 조선 건국의 이야기를 하는 드라마. 팽팽한 정치 논리 싸움과 치밀한 지략 대결, 그리고 그 속에 꽃피는 청춘 로맨스와 인간애가 녹아 있는 드라마다. 역사적 사실과 드라마적인 허구를 섞은 ‘팩션 사극’인데 제작진이 하고자 하는 주제의식에는 현실이 녹아 있다.
분명 고려 말의 혼돈을 다루는데, 지금의 우리 이야기 같은 느낌은 사극이 결국엔 현실과의 연계성을 담지 않을 수가 없기 때문. 제작진이 의도를 하든, 아니든 우린 이 드라마를 보며 작금의 현실을 개탄하고, 뼈저린 반성을 하게 된다. 지난 14일 방송된 21회 역시 그랬다. 요동 정벌로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최영(전국환 분) 때문에 도탄에 빠진 민초들을 구하기 위해 이성계(천호진 분)가 회군을 결정하자 이 모습을 본 무휼(윤균상 분)이 감명을 받는 이야기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 담겨 있다.
무휼은 명분과 실리 없는 전쟁으로 결국 고통을 받는 것은 자신과 같은 민초들이라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는 “나와 도당에서 하는 일은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상관이 있다는 거다. 도당에서 전쟁에 나가라고 하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나가야 한다. 우리 가족들도 어찌 될 줄 모른다. 난 정말로 도당에서 그런 결정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위해서 살기로 했다”라면서 이방원을 위해 충정하겠다고 다짐했다.
나라를 훌륭히 이끌어갈, 그리고 민초들을 위한 결정을 내려줄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겠다는 무휼의 말은 의미심장했다. 드라마상으로는 무휼이 진짜 이방원의 사람이 되는 순간이었지만, 안방극장은 이 장면을 단순히 무휼의 이방원에 대한 충심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었다. 무사로서 이름을 알려 어머니와 동생들을 먹여살리겠다는 소박한 꿈만 있었던 무휼이 정치란 무엇인지, 국가란 무엇인지 각성하는 순간이자, 지금 이 시대에 이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투표라는 참정권 행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우치게 하는 장면이었던 것.
은연 중에 드러낸 이 중대한 이야기는 고압적이지 않게, 강요로 다가오지 않게 그려졌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좀 더 진중하게 이 드라마를 바라보며 곱씹게 된다. ‘육룡이 나르샤’는 비록 틀에 박혀 있을 수 있는 역사와 정치, 로맨스를 다루면서 의미 있는 주제를 강압적이지 않게 전달하고 있다. 직설적이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에 잘 녹여내 안방극장이 깊은 감명을 받을 수 있게 만드는 힘은 매번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중이다. / jmpyo@osen.co.kr
[사진] '육룡이 나르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