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계상은 어쩐지 매우 치열한 사람으로 느껴진다. 필모그래피를 보면 그렇다. 늘 어려운 역할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종종 모험이 필요한 역할들을 맡아왔고 이를 빈틈없이 해냈다. 한동안 god로서 대중 앞에 서지 않았을 때, 많은 이들은 그를 '독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연기자라는 정체성을 위해 아이돌로서의 과거를 외면한다는 오해도 받았다.
하지만 그런 그가 변했다. god 멤버들과 다시 뭉쳐 팬들 앞에 서기도 하고, 진지한 배역 뿐 아니라 영화 '레드카펫'처럼 유쾌한 작품을 통해 친근한 느낌으로 대중에 다가서기도 했다.
최근 예능프로그램인 tvN '삼시세끼'에 게스트로 출연한 그는 칼날이 바늘이(?) 될 때까지 갈아버리는 집착으로 놀림을 당해 웃음을 줬다. 연기라는 목표, 열정 안에 가려져 있던 인간적인 모습들을 슬며시 드러내고 있는 것. 윤계상은 그런 자신의 변화에 대해 "배우 윤계상에서 사람 윤계상으로 돌아왔다"고 표현했다.
"제가 얼마나 연기자가 되고 싶었는지는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저에게 그게 전부였어요. 저에게는 그 자아가 하나밖에 없었고, 왠지 모르게 그게 너무 갖고 싶었어요. 한 사람이 뭔가에 꽂혀 있으면 갖고 있는 모든 걸 잃어버려요. 그런데 작년에 배우 윤계상이 아닌 사람 윤계상으로 돌아왔던 것 같아요. 가수 윤계상이 아니라. 멀찍이 떨어져 윤계상을 봤는데, 생각보다 많은 걸 가진 사람이더라고요. 지금은 god 윤계상이라고 알아봐주시면, '감사합니다' 대답해요. 그렇게 알아봐주시는 게 더 고마운 거죠. 그런 게 맞는 것 같아요.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즐겨야 하지 않을까? 그게 보는 사람도 행복해지고, 하는 사람도 행복한 것 아닐까 싶어요."
생각지 못했던 god로서의 컴백이 그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 준 듯 했다. god의 재결합 후 많이 밝아진 것 같다는 말에 "기적을 봤다"고 단숨에 대답했다.
"기적을 본 거에요. 한발짝 다가섰는데, 그 한발짝이 엄청난 사랑을 가지고 왔어요. 너무 많은 걸 얻었어요. 멤버들도 저도요. 팬들과의 소통도 다시 하고요. V앱 같은 건 예전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에요. 생방송으로 뭔가를 한다고요? 저처럼 걱정 많은 사람은 걱정 할 수 도 있는 건데, 멤버들이 있으니 할 수 있었죠. 뭔가 의지를 하는 게 행복해졌어요. 혼자 할 수 없는 일은, 내려놓고 할 수 있는 사람한테 부탁을 하면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를 배웠어요. 멤버들이 되게 많이 도와줘요. 그런 것들이 너무 고맙다. 알게 해준것도 고마워요."
윤계상은 지난 3일 개봉한 영화 '극적인 하룻밤'에서 헤어진 여자친구의 결혼식장을 찾는 '찌질한 남자' 정훈 역을 맡아 편안한 매력으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매번 연애에서 을(乙)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는 남녀의 유쾌한 로맨스를 그린 이 영화는 그의 전작 '레드카펫'과 비슷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청춘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렇다. 윤계상은 젊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어 이 영화를 택했다고 했다.
"젊은이들의 사랑 이야기 같은 느낌의 이야기였어요. 저도 처음 20대 때 사랑을 할 때 가진 고민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이 담겨있죠. 그 때는 과정이 이렇게 돼야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실패한 사랑도 있었어요. 사랑이 찾아오면 그 순간 그게 큰 행운인지 모르고 지나쳤던 것에 대한 어떤 이야기들을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것도 있었고요.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재밌었어요. 앞뒤가 뒤바뀌었지만 '괜찮아'라고 할 수 있는 위로 같은 것을 주고 싶었어요."
'극적인 하룻밤'은 발랄한 로맨틱 코미디답게 19금 장면들을 많이 담고 있다. 노출이 주가 되는 영화는 아니지만, 설정상 베드신이 많아 배우들에게는 다소 불편한 부분이 있을 수 있었다. 윤계상은 오히려 같은 소속사로 친한 사이인 한예리와 19금을 찍었기에 "편해서 좋았다"고 말했다.
"편해서 좋았어요. 처음 만난 배우하고 호흡했다면 더 어려웠을 것 같아요. (한예리와 연기가 아니었다면) 조심스럽고, 너무 고민이 됐을 것 같아요. 수위를 어느 정도까지 가야할까? 물론 감독님이 얘기하시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되고, 걱정되고. 혹 불쾌하지 않으실까? 생각할 거 같아요. (그러나 한예리와는) 친하니까 서슴없이 얘기했고, 다가가기 쉬웠어요."
윤계상은 사랑 앞에서 망설이고 무너지는 정훈의 캐릭터에 "공감한다"고 했다. 게다가 주위에 그런 남자들이 참 많다고 말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다 공감해요. '리얼'하게 공감해요. 주위에 되게 많아요. 제 친구들도 그래요. 술 먹고 전여친에게 전화하는 건 100%일걸요? 어떤 남자든, 솔로일 경우에는요. 그런 찌질한 면이 남자들이 갖고 있는 귀여움 같기도 해요. 정훈이가 너무 보여준 느낌도 있지만요.(웃음)"
정훈은 생활연기가 주가 되는 캐릭터다. 윤계상이 지금까지 맡아온 강렬한 배역들보다 한층 힘이 빠진 느낌을 주는 인물. 조금 더 편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편하지만 어려운 연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사실 편한데, 편하면서도 어려운 연기인 것 같아요. 캐릭터가 분명하게 서 있는 연기는 포인트가 있어요. 감정이 표출되는 포인트들, 어떤 성격을 보여줄 수 있는 게 확실하게 있는데, 정훈은 미세하게 잡아야하는 부분이 많아서 힘들었어요. 편집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들도 있고요. 언론시사회 때 처음 봤는데 (제 연기가) 부끄러운 것도 아쉬운 것도 많았어요."
윤계상은 한 때 '걱정인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너무 많은 것들에 대해 걱정을 해 붙여진 별명이다. 하지만 이제 30대 중반에 들어선 지금, 그는 "이젠 피곤해서 그렇게 못 한다. 졸린다"며 농담처럼 달라진 자신에 대해 말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나이가 들어갈 수록 하나씩 놓게 되면서 마음이 편해져요. 모르겠어요. 점점 더 밝아지는 거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삼시세끼'에서 제가 그렇게 리얼하게 나올 줄 몰랐어요. 저의 집착이 나오더라고요. '삼시세끼'를 보면서 내가 집착이 세구나 새삼 깨달았죠. 그러니 20대 때는 얼마나 더 세었겠어요? 나이가 들고 힘이 빠지면서 그게 없어져요. 그러면서 마음이 편해지고요."
그런 그는 인터뷰 말미, 다시 한 번 영화를 통해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강조했다. 자신의 영화를 보고 공감해 줄 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었다. 한 때 '걱정인형'이라 불렸던 젊은이는 그렇게 조금 더 넉넉해진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어른이 됐다.
"요즘 젊은이들한테, 비슷한 시기를 겪었던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괜찮아'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레드카펫'도 그랬지만. '별 거 아니야. 또 와. 괜찮아', '지나면 별 거 아니'라고. 그런 얘기도 해주고 싶어요. '놓치지 마, 걱정 때문에'라고. 우린 아무것도 벌어지지 않을 일 가지고 걱정을 많이 해요. 그런데 그 중 한 60%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죠. 그것 때문에 소중한 걸 놓치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집착을 했어요. 잡으려고 했었고, 그래서 만들어진 것도 있지만, 그래도 즐겼으면 좋겠어요. 행복했으면 좋겠고요." /eujenej@osen.co.kr
[사진] 민경훈 기자 rumi@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