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권현상이 아버지 임권택 감독과 함께 있노라면,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진다고 고백하며 안방극장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아버지의 이름값에 무임승차 할 생각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좀 더 자신을 채찍질하는 고난의 길을 택하게 되는 그의 모습이 감명 깊었다.
권현상은 현재 MBC 예능프로그램 ‘위대한 유산’에서 아버지 임권택과 함께 일상을 보내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일을 하면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담는다.
권현상은 아버지의 명성으로 쉽게 배우가 되지 않겠다는 각오로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데뷔한 그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며 배우 권현상의 이름과 얼굴을 각인시키고 있다. 아버지와의 추억을 쌓고자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그는 올 하반기 뜨거운 화제이자 논란인 ‘금수저’와는 달랐다.
아버지의 도움 없이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배우의 길을 걸어왔고, 임권택 역시 아들과 한 작품을 하거나 물밑에서 도움을 주는 일을 꺼려왔기 때문. 두 부자가 함께 TV에 나오는 일도 드물었을 정도. 이번 ‘위대한 유산’ 출연 역시도 혹시라도 시청자들을 불편하게 하는 요소가 있을까봐 큰 고민을 했다는 후문이다.
다행히도 임권택과 권현상 부자는 묵언 수행을 하는 게 익숙한 이 시대 많은 부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루에 말 한 마디 하기 힘들었던 이 부자가 그나마 조금씩 대화를 늘려가고 있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관전 지점. 여기에 지난 17일 방송은 권현상의 깊은 속내가 또 한 번 시청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프랑스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버지의 회고전이 열리는 프랑스에 함께 가게 된 것. 권현상은 무대에 서서 뜨거운 환호를 받는 아버지를 지켜보며 솔직한 마음을 털어놨다.
그는 “(여기가)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니라 느꼈다”라면서 “내가 하나의 배우였다면, 그 분의 가족이 아니라면 이 자리에 설 수 있었을까 싶다”라고 대가인 아버지에 비해 아직은 갈 길이 먼 자신의 모습을 냉정하게 평가를 했다.
영화계의 큰 어른이자 존경받는 인물인 임권택을 아버지로 둔다는 것. 배우로서 자랑이자 자신 역시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터다.
권현상은 “여기 와서도 (아버지에게) 다가가기 어려웠다”라면서 “아버지가 자랑스러운데 멀게 느껴지는 게 있었다. 내 위치와 현실이 생각난다. 내가 너무 작게 느껴진다”라고 덧붙였다.
권현상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커질수록 자신을 더욱 냉철하게 바라보게 되는 마음은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행여라도 임권택의 아들로서 명성에 금이 가는 행동을 할까봐 더욱 조심하게 되고, 얼마나 연기를 잘하나 지켜보는 일부의 편견을 깨기 위해 노력한다. 심지어 배우로서 정도를 걷고 성장해야 하니 참 쉽지 않은 게 임권택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권현상이 걷고 있는 길이다. 이날 담담하지만 간절함이 묻어났던 권현상의 말은 연기에 대한 갈증도, 배우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구도 여실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여기에서 ‘위대한 유산’의 매력이 나온다. 부모와 자녀가 투탁거리는 듯 보이고, 잠시 어색하기도 하고, 가족이라서 너무도 솔직한 면모를 보이는 일상은 우리와 다를 게 없다. 이 공감 가는 이야기에서 시청자들은 나 혹은 가족의 모습을 발견하고, 이 별 게 아닌 스타들의 하루를 지켜보게 된다. / jmpyo@osen.co.kr
[사진] ‘위대한 유산’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