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에 의해 거짓을 고하는 검사와 의사, 절대 권력으로 정의를 사는 거악, 그 속에서 발버둥을 칠 수밖에 없는 소시민. ‘리멤버’가 아버지를 구하기 위한 사회 절대 악과의 전쟁을 다루면서 건드리는 이야기가 그렇다. 참 씁쓸하지만 드라마가 아니라 2015년 현재 이 시점에도 발생하고 있는 우리 이야기다.
SBS 수목드라마 ‘리멤버’는 억울하게 수감된 아버지의 무죄를 밝히기 위해 분투하는 아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버지는 기억을 잃고 있는 서재혁(전광렬 분)이고, 아들은 절대 기억력을 바탕으로 계란으로 바위를 치려는 서진우(유승호 분)다. 여기에 돈만 밝히는 변호사였지만 진우를 돕는 박동호(박성웅 분)가 있고, 정의를 지키고자 법을 공부한 이인아(박민영 분)가 있다.
드라마는 단순한 선악 구도를 띤다. 그런데 웬만한 미친 악역이 존재하는 드라마보다 섬뜩한 것은 현실에 있을 법한 인물들이고,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대기업 회장 아들인 남규만(남궁민 분)은 살인을 저지른 후 재혁에게 덮어씌웠다. 규만은 반성은커녕 아버지 남일호(한진희 분)와 함께 더 큰 악행을 범한다.
검사를 매수하고, 의사를 꼬드겨 거짓 증언과 진술 유도로 재혁은 파렴치한 살인마가 됐다. 이 미친 부자는 재혁의 지인까지 매수했고, 심지어 성폭행을 당하고 죽은 오정아(한보배 분)의 아버지까지 죽였을 가능성이 높다. 여론은 재혁을 천하의 못된 살인범으로 여기고 있고, 진실을 알고 있는 진우와 동호는 절망한다.
정의보다는 절대 권력을 가진 일호와 규만이 짠 판이 힘을 얻는 세상. 돈과 권력이 사람을 옥죄이고, 진실을 뒤바꿀 수 있는 사회, 진우가 울부짖는 드라마 속 사회의 모습이다. 그런데 모두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가슴 한 켠이 답답하고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이 드라마가 가진 현실성이 참 매섭기 때문. 분명 드라마는 판타지를 건드리는데, ‘리멤버’는 극악무도한 사회 지도층이라는 우리가 질리도록 접한 사람들이 있을 법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 드라마의 판타지는 ‘그럼에도 정의 구현’일 테지만 말이다.
여기서 ‘리멤버’가 흥미로운 이유가 단 번에 설명이 된다. 맛깔스럽게 인물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열연 뿐 아니라, 함께 걱정하고 함께 욕할 수 있는 공감의 드라마인 것. 물론 우리의 씁쓸한 현실을 옮겨놓은 듯 하여 볼수록 찝찝한 구석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기에 흥미로운 드라마가 ‘리멤버’이다.
‘리멤버’는 현실에 가상 설정을 가미한 드라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뉴스를 통해 접하는 이야기들이 밑바탕에 깔려 있고, 그 속에 우리가 바라는 소시민적인 영웅이 있다. 이 영웅은 진우를 든든하게 돕는 실력파 변호사 동호이고, 올곧은 마음으로 아버지를 구해낼 진우다. 그리고 다소 비현실적이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인 정의의 사도인 인아도 있다. 현실에서는 개탄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지만 ‘갓멤버’라고 불리며 시청자들을 흡입하고 있는 ‘리멤버’는 조금이나마 희망을 전하고 있다. 누군가 싸우면, 싸우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진우가 아버지를 위해 분투하는 ‘리멤버’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 jmpyo@osen.co.kr
[사진] ‘리멤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