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88세, 내년이년 90세가 되는 송해가 버킷리스트를 공개했다. 무려 66년 동안 방송밖에 모르고 살아왔던 그의 소망은 작고 소박했지만, 진심이 묻어났다.
지난 18일 오후 방송된 KBS 2TV 예능프로그램 '나를 돌아봐'에서는 매니저가 된 조우종의 성화를 이기지 못하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하는 송해의 모습이 공개됐다.
송해가 가장 먼저 입을 열어 얘기한 것은 역시 가족. 그는 삶을 반추해 봤을 때 가족과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며, 특히 손주들과 함께 목욕탕도 가고 잔디밭에 나가 공도 차보고 싶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해외여행이었다. 그는 해외여행을 가 본 적 있냐는 조우종의 질문에 “내가 파라과이도 갔다 온 사람이다”라며 우쭐했다. 하지만 이 역시 쉬기 위한 여행이 아닌 촬영을 위한 일정인 것으로 밝혀졌고, 결국 송해는 자신만을 위한 해외여행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인정했다.
세 번째는 지난 방송에서도 언급한 적 있는 아내에 관한 소망이었다. 그는 “내가 생각하기엔 아내를 너무 고생을 시켰다”며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드러냈다. 군대 상사의 동생으로 만나 첫눈에 반했고, 결혼을 결심했지만 1.4 후퇴 때 월남해서 가족이 없었던 송해 때문에 식을 올리지 못했던 아픔이 있었던 것.
이에 조우종은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결혼식 못해본 걸로는 형님이나 저나 똑같다. 형님이 더 급하시다”라고 농담을 던졌지만, 송해는 “사실 이 문제로 고민이 많았다”라며 “갑자기 결혼하자고 해서 괜히 그 사람이 놀랄 것 같다. 휑하니 삐쳐서 가면 어떡하냐”며 고민을 전하기도 했다.
이렇게 완성된 송해의 버킷리스트는 앞서 언급했듯이 화려하지도 독특하지도 않은, 아주 평범하고 소박한 소망들로 채워졌다. 방송에 집중했던 세월 덕분에 자기 자신과 곁에 있는 사람들과 보낼 시간이 부족했던 그의 일평생이 한눈에 그려지는 듯 했다.
또한 방송 말미에는 조우종과 함께 용산 전쟁기념관을 찾아 과거 피난길을 회상하는 송해의 모습이 그려져 더욱 안타까움이 향했다. 그는 통일이 된다면 부모님이 가장 먼저 생각날 것 같다며 “평소처럼 강화도로 피난길에 올랐는데 어머니께서 손을 흔드시면서 ‘이번에는 조심해라’라고 하시더라. 그게 마지막이었다”고 눈물 흘렸다.
이어 “사람이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하는 것만큼 불효가 없다. 지금은 돌아가셨겠지만 어디 계신지도 모른다. 얄궂은 운명 아니냐”며 슬퍼하던 송해는 “저는 틀림없이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얼마나 보고 싶고 그리웠으면 나도 모르게 그런 얘기가 나왔겠냐”라며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라고 고백했다.
이처럼 송해는 그간 항상 밝고 굳건해보였던 모습과는 달리, 순수하면서도 지울 수 없는 상처를 간직한 속내를 드러내며 많은 이들을 안타깝게 만들었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고 했던가. 부디 우리 곁에 오랫동안 남아 못다 이룬 소망들을 하나씩 천천히 이뤄가길 바랄 뿐이다. / jsy901104@osen.co.kr
[사진] '나를 돌아봐' 방송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