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부정이 뜨겁고 모정이 따스하다. 부정이 강렬한 이미지라면 모정은 비단결처럼 부드럽다.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는 거꾸로다. 박보검의 슈퍼맨이자 엄마이고 아버지인 최무성은 눈물 한 바가지 부정을 드러낸다. 어남류 류준열의 멘토인 라미란은 어떤가. 입만 열면 호통이고 욕 세례를 퍼붓는 카리스마 모정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응팔' 신원호 감독과 이주정 작가는 이렇게 통념을 벗어난 부정고 모정의 배치로 더 극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야 어떻든, 최무성과 라미란의 자식 사랑만큼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는 점에서 똑같다. 시청자들은 이 둘의 모정과 부정을 교차해서 바라보며 더 깊은 감동을 느끼기 마련.
더군다나 최무성의 아들 보검과 라미란의 아들 준열은 혜리를 놓고 사랑을 다퉈야할 친구이자 라이벌이다. 1980년대 자신의 삶보다 자식 앞날에 모든 걸 걸었던 우리네 부모들 모습에 눈물 펑펑 흘리던 시청자가 울다가 웃을 수밖에 없는 절묘한 장치다.
먼저 모정같은 부성의 주인공 최무성. 겉으로는 차갑고 퉁명스럽지만 뒤에서는 세심하게 챙겨주는 이른바 어른표 '츤데레' 캐릭터다. 18일 방송분에서 한국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나리타 공항에서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나자 택(박보검 분)이가 탑승했다는 오보가 났고 무성(최무성 분)을 크게 걱정하게 했다. 무성은 택이가 일본 숙소 전화번호를 적어놨다고 말했는데, 그 종이는 물에 젖어 번호를 알아볼 수 없었다.
무성은 택이 숙소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기억해냈고, 자물쇠를 맨손으로 뜯어내며 수첩을 찾아 선우에게 전화 연결을 부탁해 그가 호텔에 잘 도착해 있었다는 사실을 재빨리 알아냈다. 택이는 샤워하느라 전화를 늦게 받았는데, 그 동안 무성은 지옥을 경험했다. 언제나 담담하던 무성의 흥분하는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후 택이는 자신이 전화를 늦게 받아 무성이 크게 걱정했다는 사실을 알고 안타까워했다.
보검을 사랑하는 무성의 모습은 늘 이런 식이다. 나보다 아들이 항상 먼저다. 그 진심이 투박한 무성을 통해서 한층 진하게 시청자 가슴을 파고든다. '응팔'에 먹먹해지는 이유다.
그 다음 열혈 모정 라미란. 여기에 '1988' 버전의 특별함은 보다 강력해진 여자 츤데레에게서 찾을 수 있고 대표주자가 바로 라미란이다. '응팔' 속 모든 남자들의 이상형 캐릭터는 덕선(혜리)이 아닌 라미란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 만큼 강력하게 시청자를 강력하게 빨아들인다.
거친 욕을 입에 달고 살면서 남편 김성균의 부실한 밤일(?)을 우스갯 소리로 내뱉는 그녀가 가슴 속에 담은 모정은 얼마나 보드랍고 푹신한가. 또 세상 누구보다 여린 여성이 라미란이다. 여권의 영문 이름을 불러달라는 준열의 성화에 이리저리 피하던 중졸 엄마. 결국 "엄마가 영어를 몰라. 영어를 모른다고...아들 미안해"라고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은 '응팔'의 명장면으로 기록될 게 분명하다.
동네 가난한 이웃들에게는 어찌 그리 다정하고 펑펑 베풀고 사는지. 올림픽 복권 당첨으로 일확천금했어도 졸부가 되지않고 거부가 된 라미란의 모습은 오늘 대한민국 한강의 전설을 만든 주역이 이땅의 엄마들이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운다.
이런 라미란을 제대로 묘사한 OSEN 리뷰의 일부를 인용하면 이렇다. "쌍문동 ‘벼락 사모님’은 무심하고 차가워보이지만 한 순간 보는 이의 마음에 훅 들어가는 따뜻한 매력을 지녔다. 미란은 마음 적으로나 재력으로나 주위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게 만든다. 많이 가진만큼 베풀 줄 아는데 그러면서도 소박하다. 연탄을 트럭으로 시켜 쌓아두는 부자이면서도 몇 년전만 해도 장작을 뗐다라며 어려웠던 과거를 상기한다. 주위에 있기만 해도 저절로 힘이 되는 사람이다."라고.
최무성의 부정과 라미란의 모정을 함께 할 수 있어 훈훈한 2015년 겨울이다./mcgwire@osen.co.kr
[엔터테인먼트 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