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히말라야’(감독 이석훈) 엔딩 크레딧에서는 ‘그리고 정유미’라는 이름을 찾을 수 있다. 특별출연하는 배우들 앞에는 언제부터인가 ‘특별출연’ 보다는 ‘그리고’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그 효과는 제법 쏠쏠하다. 특별출연한 배우가 영화에서 얼마만큼 활약을 펼칠지 가늠할 수 없어 궁금증을 자극하는 것.
정유미는 ‘히말라야’에서 고(故) 박무택 대원의 부인 최수영 역으로 출연했다. 수영은 무택과 대학교 산악부 선후배로 만나 5년간 연애했다. 그러나 무택이 엄홍길(황정민 분) 대장이 이끄는 히말라야 원정대에 합류하게 되면서 수영과는 결별을 택했다. 산 위에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무택은 칸첸중가 등정에 성공한 후 수영이라는 산에 올랐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정우와의 케미스트리(조합)가 넘쳤다. 그도 그런 것이 정유미는 로맨틱코미디의 여신이라고 불릴 정도로 누구와 붙여놔도 남다른 케미를 자랑하기로 유명하다. KBS 2TV ‘연애의 발견’에서는 에릭, 성준과 호흡했고, tvN ‘로맨스가 필요해 2012’에서 이진욱과 펼친 케미는 ‘로코’의 정석이 됐다.
이처럼 누구와 ‘로코’ 호흡을 맞춰도 사랑스러움이 넘치는 정유미는 이번엔 다소 터프한 기질이 있는 대구 여자로 변신, 정우와 찰떡 호흡을 펼쳤다. 두 사람은 실제로도 대학교 선후배 사이라고. 이어질 비극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사랑은 유쾌한 에피소드가 넘쳤지만 애틋함을 동반했다.
이후 무택이 히말라야 데스존이라고 불리는 8750m에서 숨을 거두면서 정유미의 역할은 다크호스처럼 떠오른다. 무택의 시신을 운반하는 과정이 생각보다 어려웠고, 이로 인해 많은 부상자가 발생한다. 수영은 휴먼 원정대에게 무전기로 “오빠는 산이 좋은 가봐요”라며 눈물로 제발 그냥 내려와 달라고 호소한다. 이는 시나리오에 없었던 장면이지만, 황정민의 의견으로 추가한 장면이기도 하다.
성인남자도 버티기 힘든 베이스캠프에 씩씩하게 걸어와 휴먼 원정대에 대한 감사함을 표했던 수영. 그가 눈물로 무택을 두고 내려와 달라고 하고, 휴먼 원정대 대원들의 안위를 더 생각하는 모습에서 이 영화가 지향하는 바가 더 잘 드러났다. 휴먼 원정대의 목적은 박무택 대원을 비롯해 실종된 대원들의 시신을 한국으로 운반해 장례를 치르겠다는 것. 그러나 목적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에 있었다. 결국 또 선택의 갈래에서는 사람을 선택했다.
이로써 정유미는 ‘히말라야’에서 정우와의 멜로, 절제된 감정연기 등 다크호스 역할을 톡톡히 하면서 감동을 더욱 배가시키고 있다. / besodam@osen.co.kr
[사진] '히말라야'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