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 ‘응팔’ 류혜영이 보여준 언니의 품격
OSEN 박진영 기자
발행 2015.12.23 06: 58

“넌 보라(류혜영 분) 누나가 안 무서워?”라는 택(박보검 분)의 질문에 선우(고경표 분)는 오히려 좋다고 답을 했다. 퉁명스러운 말투와 표정, 화가 나면 고래고래 소리를 내지르는 보라의 진면목을 선우는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청자들 역시 첫 인상과는 달리 회를 거듭할수록 맏언니로, 큰누나로 듬직하게 주위 사람들을 챙기는 보라의 진짜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있다.
류혜영은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극본 이우정, 연출 신원호, 이하 ‘응팔’)에서 동일(성동일 분)과 일화(이일화 분)의 첫째 딸이자 덕선(혜리 분)의 언니 보라 역을 맡아 열연 중이다. 신경질적이고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인 보라를 동네 사람들 모두 무서워한다.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해야 하고, 화가 나면 물불 가리지 않는 다혈질이라 덕선과 머리채를 잡고 싸우기 일쑤다. 극 초반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은 티격태격을 넘어 난투극 수준이었다.
그런데 회가 거듭되면 될수록 보라는 까칠함 속 따뜻하고 다정한 속내를 드러내 시청자들에게도 든든한 언니, 누나가 되어 주고 있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무심한 척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누구보다 따뜻하고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 이는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눈물을 참는 선우를 안아주던 장면, 돌아가신 할머니에 눈물을 펑펑 쏟는 동생 덕선과 노을(최성원 분)을 다독이는 장면 등에서 제대로 드러난다.

지난 2회에서 보라는 할머니 상갓집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계속 우는 동생 덕선을 침착하게 달랬다. 그리고 혹시라도 버스 안이 불편하지는 않을까 싶어 덕선의 가방을 자신의 발 아래로 옮겨줬다. 노을에게도 상갓집 가면 못 잘 테니 버스 안에서 꼭 자라고 신신당부했다. 또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노을에게 “니가 아빠보다 더 슬퍼? 울지마. 아들이 아빠 위로해야 될 거 아냐”라며 듬직한 ‘큰누나’의 면모를 드러냈다.
또 8회에서 보라는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슬픔을 억지로 누르는 선우를 꼭 안아주며 “이럴 때는 우는 거야. 괜찮아. 울어도 돼”라고 그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이어 손이 왜 이리 차냐고 묻는 선우에게는 “마음이 따뜻해서 그래”라고 대답을 해 안방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서울대 수학교육학과에 재학중인 보라는 덕선, 노을과는 다르게 공부 참 잘하는 수재로 통하고 있는데, 아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데모에 참여하거나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을 휘어잡으며 훈계를 하는 등 전형적인 모범생 스타일에서 탈피한 모습으로 그 매력을 더욱 배가시키고 있다. 또 어려운 일을 당한 이웃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선우 엄마 선영(김선영 분)이 급히 고향으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에서 보라는 자신의 차를 직접 운전하기도 했는데, 이 때 보라는 민중 가요가 나오자 강단 있는 모습으로 노래를 따라 불러 웃음을 자아냈다. 정봉(안재홍 분)은 이런 보라에 대해 “표현이 거칠 뿐 따뜻한 여성”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
보라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내 옆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것 같은 듬직함이다. 이는 12회에 등장한 내레이션을 통해 극대화됐는데, 당시 보라는 목욕탕 청소 일을 하는 어머니 때문에 속상해하는 선우에게 “야, 됐고 엄마 어깨나 주물러 드려”라며 투박하지만 확실한 조언을 했다.
그리고 보라는 선우에게 “넌 엄마 고생하는 거 싫지? 그게 너 마음도 편하고. 엄마는 너 나이키 운동화 하나 못 사주는 게 싫은 거야. 넌 네 생각만 하고 엄마 생각은 안 해?”라며 어른들의 마음까지 헤아릴 줄 아는 속 깊은 면모를 드러냈다.
이어 보라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냥 주고 싶은 넉넉함이 아니라 꼭 줄 수밖에 없는 절실함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진짜 어려운 거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단지 그 사람의 체온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체온을 닮아간다는 얘기다. 그리고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이 끝없이 너를 괴롭게 만든다고 해도, 그래서 그 사람을 끝없이 미워하고 싶어진대도 절대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해”라는 내레이션을 통해 안방 시청자들에게도 깊은 여운을 남겼다.
아빠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우는 선우를 안고 토닥토닥해주고, 동생들이 아빠에게 용돈을 달라고 떼를 쓸 때도 “나는 됐어”라고 말하는 ‘맏언니’, ‘큰누나’ 보라의 듬직함은 배우 류혜영의 맛깔스럽고 탄탄한 연기력을 통해 더욱 빛이 나고 있다. 2007년 17살 어린 나이에 단편영화 ‘여고생’으로 데뷔를 한 류혜영은 독립영화에서 괄목할만한 활약을 보이며 ‘독립영화계의 공효진’이라 불려온 배우다. 그만큼 류혜영이 쌓아온 연기 내공이 탄탄하다는 의미다. 앞으로 보라는 진로 문제로 인해 고민을 거듭하게 될 전망으로, 류혜영이 보여줄 깊은 감정 연기가 더욱 기대되는 순간이다. /parkjy@osen.co.kr
[사진] CJ E&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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