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1분이었다. 배우 박혁권은 그 짧은 시간 동안 대사 한 마디 없이, 그저 자연스럽게 풍겨져 나오는 카리스마 하나로 안방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재등장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그 시간이 결코 아깝지 않았다. 과연 ‘신스틸러’다운 압도적인 존재감이었다.
지난 21일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 신경수) 23회에는 미리 예고된대로 길태미(박혁권 분)의 형 길선미(박혁권 분)가 재등장해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날 이방원(유아인 분), 분이(신세경 분), 이방지(변요한 분), 무휼(윤균상 분)은 조준(이명행 분)이 숨겨놓은 자료를 가져오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하지만 이들보다 먼저 움직인 이가 있었으니, 바로 하륜(조희봉 분)이다. 그는 화사단의 도움을 빌려 자료를 빼냈고, 이를 통해 이방원까지 만나게 됐다.
그 시각 이방지와 무휼은 살인까지 저지르며 자료를 빼낸 사내들과 맞서 싸웠는데, 그 순간 길선미가 갑자기 나타나 두 사람을 막아섰다. 이미 길선미와 안면이 있는 이방지는 당황했고, 힘으로 길선미에게 밀린 무휼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길선미의 등장은 단 1분. 물론 대사 하나 없었다. 그럼에도 박혁권은 놀라운 액션 연기와 강렬한 눈빛, 넘치는 카리스마 등으로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며 시선을 강탈했다. 분명 같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길태미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를 뽐내는 박혁권이 이토록 반가운 건 역시나 그가 보여줄 탄탄한 연기력이 기대되기 때문일 테다.
앞서 박혁권은 화장하는 무사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 길태미를 그만의 맛깔스러운 연기력으로 살려내 신드롬급 인기를 얻었다. 늘 잔망스러운 몸짓과 교태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칼만 잡았다 하면 섬뜩한 무사의 본능을 보여주곤 했다. 위기에 빠진 순간에도 더욱 선명하게 아이라인을 그리며 화장을 하던 그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부와 명예를 위해서라면 사람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었던 악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을 때는 아쉽다는 반응이 쇄도할 정도. 그만큼 박혁권이 만들어낸 길태미는 2015년 최고의 캐릭터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기에 길태미의 쌍둥이 형인 길선미의 등장은 시청자들의 눈을 번쩍하게 만들었다. 이미 길선미는 어린 땅새(윤찬영 분)의 목숨을 구해주는 장면, 길태미가 성인이 된 땅새(이방지)에게 죽는 장면 등에서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그 때마다 길선미는 길태미와는 완벽히 다른,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성격을 보여주곤 했다.
이번 등장 역시 마찬가지다. 길선미는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과 길게 헝클어진 머리, 무채색의 의상 등으로 성격을 표현하고 있는데 초야에 묻혀 사는 은둔 고수로 알려져 있는 그가 어째서 이방지와 무휼 앞에 나타나게 된 건지, 또 두 사람을 왜 막아서게 된 건지 그 의중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그리고 길태미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박혁권이 의문이 가득한 길선미를 통해 또 한 번 안방에 파란을 일으킬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한편 ‘육룡이 나르샤’는 조선의 기틀을 세운 철혈 군주 이방원을 중심으로 한 여섯 인물의 야망과 성공 스토리를 다룬 팩션 사극이다. /parkjy@osen.co.kr
[사진] ‘육룡이 나르샤’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