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의 공식’은 몰라도 인생은 아는 남자, 이동휘의 활약이 눈부시다.
덕선(혜리 분)과 동룡(이동휘 분)의 소꿉친구 조합이 지난 19일 방송된 tvN 금토드라마 ‘응답하라 1988’(극본 이우정, 연출 신원호·이하 ‘응팔’)에서 정점을 찍었다. 쌍문여고 ‘특공대’와 자타공인 ‘쌍문고 박남정’, 까불까불하고 넉살 좋은 두 친구의 궁합은 ‘응팔’의 가장 큰 웃음포인트였다. 특히 동룡은 공부 잘 하고 훤칠한 단짝들과 학생주임인 아버지에게 치이면서도 기죽지 않는 매력을 보여주며 시청자들로부터 열렬한 호응을 얻어 왔다.
그런데 ‘응팔’의 웃음제조기였던 동룡이 의외의 면모를 보였다.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것 같다며 실망감에 빠진 덕선을 그만의 방식으로 위로한 것이다. 덕선은 정환(류준열 분)에게 생일선물로 준 셔츠가 정봉(안재홍 분)의 손에 들어간 것으로 오해한다. 나름대로 정환을 향한 마음을 표현했다고 믿었는데 이를 깡그리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덕선은 가로등 아래 계단에 주저앉은 채 한숨을 쉬었다. 신발 끄는 소리와 함께 다가온 동룡은 그런 덕선의 옆에 앉으며 무심히 말을 건넸다. “왜 이래, 영화 찍냐?” 말투는 퉁명스러웠지만, 그 안에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 “왜 아무도 날 좋아하지 않는 걸까”라고 울먹거리는 덕선을 보며 동룡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어 동룡은 빈 골목을 가리키며 “어, 택이다!”라고 소리쳤다. 덕선은 동룡의 손 끝을 따라 눈을 들어 보지만 택은 없었다. 이번에는 덕선에게 질문 세례가 퍼부어진다. “너 물고구마가 좋아, 밤고구마가 좋아? 이문세가 좋아, 박남정이 좋아? 내가 좋아, 택이가 좋아?” 덕선은 동룡의 질문에 고민 없이 즉답을 내놓는다. 동룡은 다시 한 번 묻는다. “그렇다면 정팔(정환)이가 좋아, 선우가 좋아?” 덕선은 “뭐 그런 걸 물어보고 그래?”라며 얼버무린다. 그리고 동룡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응팔’ 속 삼각관계의 화살표가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그다.
그러면서 동룡은 말했다.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것 말고, 너.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고구마 취향은 그렇게 분명한 애가 좋아하는 사람 취향 같은 건 없냐?” 공부하다 졸음이 올 때 세수하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아버지가 담임 선생님을 맡게 되자 책상에 엎드려 울던 철부지 동룡이 이렇게 명쾌한 해답을 줄 것이라고 누군들 예상이나 했을까. 그는 또 한 마디를 덧붙였다. “요즘 애들은 근의 공식만 알지 인생을 몰라요.”
덕선과 친구들에게 오랫동안 관심을 두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명언’이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동룡과 덕선처럼 온전히 ‘친구로만’ 있어줄 수 있는 이성의 비율은 적어진다. 어릴 때부터 내 곁에서 함께한 덕에 인생 상담을 기가 막히게 해 주는 친구도 드물다. 그러나 ‘응팔’ 속 동룡은 이 모두에 해당되는 친구다. 덕선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심 가족들이 자신을 필요로 하길 바라는 정환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섬세하게 짚어 정환에게 일러 주었을 뿐만 아니라 덕선 만큼 다정하게 택(박보검 분)을 보살펴 주기도 한다. 선우(고경표 분)와 함께 있을 때도 자신을 기꺼이 내던지며 웃음을 줄 때도 있다.
밝고 유쾌한 동룡 안에 섬세하고 다정한 동룡이 시선을 끈다면, 또 그 안에 존재하는 외로운 동룡도 마음을 붙잡는다. 가출을 해도 신경쓰지 않는 부모님, 컵라면 도시락에서 도망친 곳은 언제나 친구들 곁이었다. 외로움이라는 인생의 쓴맛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동룡은 친구들과 부대끼고 그들을 지켜보면서 이를 달래고, 위로받았다. 친구들에게 동룡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지만, 동룡에게도 친구들이 그렇다. 친구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 어디에도 없는 멋진 친구가 돼 버린 그다. ‘근의 공식’은 몰라도 인생은 아는 남자, 동룡의 활약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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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tvN ‘응답하라 1988’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