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영업을 당하지 않겠노라, 다짐해도 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오늘도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무심한 듯 보이나 따뜻한 속내를 가진 남자 주인공에게 빠졌다면, 학습을 해도 자꾸 멈추지 않는 주책맞은 내 심장을 탓할 수밖에.
tvN 금토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삼각관계가 무르익고 있는 가운데, 달달하고 설레는 말 한 마디 할 줄 모르지만 남 모르게 사랑하는 여자를 챙기는 따뜻한 남자 김정환(류준열 분)에게 얼굴이 붉어지는 시청자들이 많다. ‘응답하라’ 인기의 시작이었던 ‘응답하라 1997’ 윤윤제(서인국 분)부터 쓰레기라는 별명이 더 익숙했던 김재준(정우 분), 그리고 앞선 ‘응답하라’ 시리즈의 남자 주인공과 별반 다르지 않아도 여전히 멋있는 김정환이 그렇다.
윤제, 쓰레기, 정환의 공통점은 닭살스러운 애정 표현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허나 사랑하는 연인과 지켜야 하는 가족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따뜻한 남자다. 다른 여자에게 한 눈을 파는 일도 없을뿐더러, 어찌나 진중한지 친구 혹은 가족과 한 여자를 두고 삼각관계가 얽혔을 때 고민과 고뇌가 꽤나 길게 이어진다.
촐싹맞지 않고, 웬만한 일에는 당황하지 않지만, 여자 주인공이자 모두 성동일(성동일 분)의 딸이었던 성시원(정은지 분), 성나정(고아라 분), 성덕선(혜리 분)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한 걸음에 달려오는 듬직한 남자다. 그야말로 여자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남자 주인공의 매력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게 ‘응답하라’ 시리즈 속 무심한 남자이자 주인공의 공통점이다. 이들이 여성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순간도, 대부분은 그동안 참았던 감정을 분출하거나 여자 주인공을 누구보다 더 든든하게 지켜줄 때의 모습이다. 박력 넘치는 순간, 안방극장은 시대만 다를 뿐 판박이 매력을 가진 이 남자들에게 강하게 흔들렸다.
# 1997년 어느 날, 윤제가 그랬다...만나지마까(1회)
윤제와 시원은 소꿉친구. 사춘기가 된 후 시원을 이성으로 좋아하게 된 윤제는 시원이의 친구인 모유정(신소율 분)에게 고백을 받고 시원이를 찾아갔다. “내 오늘 유정이한테 고백 받았다. 우짜지?”라고 시원이의 마음을 떠보는 윤제. 시원이는 주저하고, 윤제는 “만나지마까?”를 무려 세 번이나 물었다. 점점 강한 어조로 떨리는 마음이 드러나는 윤제와 자신의 마음을 몰라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하는 시원이의 풋풋한 첫 사랑은 시청자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언제나 생일 선물로 윤제에게 소원 수리권을 안겼던 시원. 윤제는 ‘무조건 소원 들어주기’ 종이를 찢으며 “만나지말라케라”라고 자신이 듣고 싶은 시원의 답을 정해줬다. 시원은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긍정의 표시를 했고, 이 숨막히는 정적은 설레지 않고 버틸 수가 없었다. 어린 나이지만 윤제의 시원이에 대한 진중한 사랑이 느껴졌던 “만나지마까?”라는 이 한 마디는 ‘응답하라 1997’ 첫 방송 전 예고로 공개된 이후부터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며 신드롬의 전초전이 됐다.
서인국 특유의 날카로운 옆선과 섹시한 눈빛, 사투리에서 풍겨져 나오는 의외의 남성미는 ‘슈퍼스타K’ 출신 가수 서인국을 배우 서인국으로 바꿔놓는 장면이 됐다.
# 1994년 어느 날, 첫 키스부터 강렬했던 ‘나레기’(13회)
정말 오래도록 기다렸다. 쓰레기는 친동생처럼 여기는 나정이의 고백을 받은 후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고민했다. 오랜 친구 사이인 서로의 부모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고민하는 사이 연적인 칠봉이(유연석 분)는 나정이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쓰레기를 불안에 떨게 했다.
쓰레기가 주저하는 사이 나정이는 쓰레기가 자신에게 마음이 없다고 생각해 실망했다. 쓰레기는 나정이에게 고백을 하기 위해 날짜를 고민하고 있었고, 나정이는 자신을 부담스럽게 생각한다고 오해해 쓰레기를 피했다. 결국 두 사람의 오해가 쌓여 시청자들이 답답했던 순간, 쓰레기가 돌진했다. 나정이가 허리 운동을 완벽하게 수행하고 포상으로 장난스러운 포옹을 해달라고 손을 벌리자 바로 키스를 한 것.
횡단보도를 뛰다 시피 걸어 이어진 키스, 쓰레기의 박력 넘치는 애정 표현은 그동안 두 사람이 잘 되길 바랐던 시청자들의 간절한 마음을 한 번에 해결했다. 포옹도, 손을 잡는 것도 건너뛰고 키스부터라니. 이들이 오랜 시간 동안 이어온 인연만큼이나 빠른 진도였다. 더욱이 쓰레기의 화끈한 키스와 이 드라마의 OST이자 서태지의 노래를 다시 부른 성시경의 ‘너에게’의 달달한 노래는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이 장면 이후로 ‘응답하라 1994’는 ‘쓰레기+나정(나레기)’ 커플의 키스신이 여러차례 나왔는데 갈수록 진하게 그려졌다. 정우는 진한 키스신을 설레게 표현하며 이 드라마 이후로 ‘키스신의 신’이 됐다.
# 1988년 어느 날, 정환이가 개정팔을 벗는 순간(4회)
늘 덕선을 놀리기 바빴던 정환이. 덕선이는 그런 정환을 ‘개정팔’이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욕지거리를 해왔다. 두 사람은 투닥거리는 오랜 친구였지만, 버스 장면을 계기로 설레는 사랑과 우정 사이의 줄타기를 타게 됐다. 정환이와 덕선이는 같은 학교는 아니지만 등굣길이 비슷해 한 버스를 타고 다닌다. 만원 버스가 흔들리며 중심을 잡기 힘들어하는 덕선이를 지켜보던 정환은 그 비좁은 만원 버스에서 어느 순간 덕선이의 뒷자리를 사수했다.
덕선이는 갑자기 편안하게 서 있을 수 있었는데, 모두 정환이의 노력 덕분이었다. 정환이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덕선이가 다른 남자 승객들과 엉키지 않도록 뒤에서 중심을 잡고 서 있었다. 마치 핏줄이 터질 듯 손에 힘을 꽉 주고 자리를 지키는 정환, 얼굴에는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정환이의 보호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 덕선이의 어리둥절해하는 표정과 있는 힘껏 덕선이를 지키는 정환이의 남자다운 모습은 ‘개정팔’이라는 별명이 사라지는 순간이 됐다.
이 장면은 류준열이라는 독립영화에서 주로 활동하던 배우의 이름을 시청자들에게 확실히 알리는 장면이 됐다. 장난기 가득한 소년으로만 보였던 정환이가 든든한 내 남자 하고 싶은 남자가 됐을 때, 시청자들은 또 다시 ‘응답하라’ 남자 주인공의 마법에 당하고 말았다. / jmpyo@osen.co.kr
[사진] tvN 제공, ‘응답하라’ 시리즈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