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현주와 박혁권의 활약이 눈부시다.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인 2역도 이들이 하면 다르다.
김현주는 SBS 주말드라마 ‘애인있어요’(극본 배유미, 연출 최문석)에서 전혀 상반된 성격의 쌍둥이 자매 도해강과 독고용기 역을 맡아 1인 2역을 연기하고 있다. 4년 전 도해강은 자비와 인정은 찾아볼 수 없는 냉철한 기업 변호사로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어냈다. 남편 최진언(지진희 분)와 갈등을 겪는 순간조차도 도도함을 잃지 않았고, 불륜녀 강설리(박한별 분)에게는 간담이 서늘해지는 차가운 눈빛과 독설을 퍼부어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냈다.
반면 뽀글 파머머리를 한 만삭 임산부로 등장을 했던 독고용기는 구수한 말투와 밝은 성격 등으로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현주라는 한 배우가 연기한다고는 감히 상상도 못할 정도로 도해강과 독고용기는 너무나 다른 모습. 이는 연출자인 최문석 PD가 김현주에게 강력한 러브콜을 보냈던 이유를 십분 느낄 수 있게 했다.
더 놀라운 건 사고를 당한 이후다. 도해강은 의문의 교통 사고 이후 기억을 잃고 독고용기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됐는데, 이 때 도해강은 전혀 다른 인격체로 변모했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정이 많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의 사도가 된 도해강은 김현주의 편안하고 안정적인 연기력을 만나 새로운 캐릭터를 완성, 시청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특히나 최진언 역의 지진희와 만들어내는 달달한 로맨스는 안방을 뜨겁게 달궜고, 강력한 팬덤 현상까지 만들어냈다.
그 중에서도 압권은 4년간의 기억을 잃은 척 모두를 속였다는 사실을 백석(이규한 분)에게 밝히며 눈물을 흘리던 장면. 독기를 제대로 품은 도해강으로 귀환한 김현주의 반전 카드는 안방 극장에 파란을 일으켰고, 소름 돋을 정도로 완벽하게 1인 다역을 소화해내는 김현주의 놀라운 연기력에 시청자들은 “김현주가 2015 연기대상을 받아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현주는 “1인 2역, 어떤 분들은 2인 3역이라고들 하시는데 그 불안감이 있었다. 분산이 되면 어쩌나, 감정을 쫓아갈 수 있을까 하는..그러나 1, 2회 대본을 수험생처럼 파고, 감정선을 정확히 느낀 뒤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산으로 갈 수 있는 캐릭터라 넘나드는 폭이 큼에도 불구하고, 분산하지 않고 하나로 몰아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인생 연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20년차 연기 내공을 폭발시킨 김현주의 놀라운 활약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김현주에 맞서는 ‘1인 2역’의 강자는 바로 배우 박혁권이다. 박혁권은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 신경수)에서 쌍둥이 형제 길태미와 길선미 역을 맡아 육룡 못지 않은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박혁권은 화장하는 무사라는 전무후무한 캐릭터 길태미를 그만의 맛깔스러운 연기력으로 살려내 신드롬급 인기를 얻었다. 늘 잔망스러운 몸짓과 교태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칼만 잡았다 하면 섬뜩한 무사의 본능을 보여주곤 했다. 위기에 빠진 순간에도 더욱 선명하게 아이라인을 그리며 화장을 하던 길태미의 모습은 잊을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부와 명예를 위해서라면 사람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었던 악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죽을 때는 아쉽다는 반응이 쇄도할 정도. 그만큼 박혁권이 만들어낸 길태미는 ‘길태쁘’(길태미는 예쁘다)라는 애칭까지 얻으며 2015년 최고의 캐릭터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반해 은둔 고수인 길선미는 진중하고 무게감 있는 성격의 소유자. 길선미는 극 초반 어린 땅새(윤찬영 분)의 목숨을 구해주는 장면, 길태미가 성인이 된 땅새(변요한 분)에게 죽는 장면 등에서 모습을 드러낸 바 있는데, 그 때마다 덥수룩하게 자란 수염과 헝클어진 머리, 무채색의 의상 등으로 길선미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이 역시 박혁권의 빛나는 연기력에서 비롯됐다. 아무래도 1인 2역이다 보니 배우의 연기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다면 극적 몰입도가 떨어지기 마련인데 박혁권은 각 캐릭터가 가진 매력을 오롯이 살려내는 동시에 등장만 했다 하면 극에 집중하게 하는 탁월한 능력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길태미와 길선미 모두 무술 실력으로는 일가견이 있는 인물들인데 박혁권은 액션 연기까지 완벽하게 소화하며 캐릭터에 힘을 실어 넣었다.
아직까지 길선미가 왜 조준(이명행 분)의 자료를 찾아다녔는지, 또 이방지와 분이(신세경 분)의 엄마인 연향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드러나지 않은 상황. 이에 길선미의 비밀이 앞으로 극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그리고 박혁권은 이 길선미를 통해 또 얼마나 큰 반향을 일으킬지 관심이 쏠린다. /parkj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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