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인의 축제 연예대상은 역시 상을 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당연히 자리를 빛내는 톱 개그맨들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상을 못 받는 것에 대해 일부러 짜증을 내며 재미를 선사한 이경규, 내년에는 시청자가 뽑은 최고의 프로그램상을 받고 싶다고 소망을 내비친 강호동, 시상식 내내 춤을 추거나 박수를 건네며 국민 MC의 품격을 보여준 유재석까지. 무관의 제왕들이 있어 KBS 연예대상이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선사했다.
지난 26일 열린 KBS 연예대상 시상식은 매년 그래왔듯이 지상파 3사 연말 시상식의 포문을 열었다. 연예대상은 연기대상과 달리 상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도 언제나 자리를 지켜주는 톱 개그맨들의 의리 덕에 보는 재미가 있는 시상식이다. 올해 KBS 연예대상 역시 대상 후보들이 모두 참석해 시상식을 즐겼다.
대상을 차지한 이휘재를 비롯해 MC였던 신동엽, 무관의 제왕인 이경규, 강호동, 유재석, 차태현까지. 대상 후보들은 후배들의 수상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아낌없이 박수를 쳤다. 연예대상의 백미는 아무래도 대상 후보들의 입담을 살펴볼 수 있는 속마음 인터뷰일 터다. 이경규는 함께 ‘나를 돌아봐’에 출연 중인 아나운서 조우종이 대상 후보들을 만나면서 인터뷰를 하자 장난스럽게 버럭 화를 냈다. 아무래도 대상 수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조우종에게 괜한 짜증을 부리며 웃음을 안겼다.
MC를 맡았던 신동엽 역시 이경규가 대상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농담을 쏟아냈다. 어떻게 보면 불편할 수 있는 농담인데도, 이경규는 후배들과 함께 대상 후보에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 듯 재미를 선사하기 위해 자신이 다소 약한 대상 후보라는 사실을 끊임 없이 실토하며 짜증을 냈고 덕분에 시상식 분위기가 활기차게 바뀌었다.
유재석은 후배들이 꾸미는 무대에 아낌 없이 박수를 보내거나 함께 춤을 추며 흥을 돋았다. 특히 수상을 하기까지 사연이 많은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콘서트’ 개그맨들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따뜻한 시선을 보여 ‘클래스가 다른’ 선배 개그맨의 모습을 보여줬다. 절친한 친구인 이휘재가 대상을 받자마자 가장 큰 박수를 보내고 포옹을 한 것도 유재석이었다.
강호동이 연예대상에서 조명을 받은 것은 단 한 번의 순간이었다. ‘우리동네 예체능’이 베스트 팀워크 상을 수상했기 때문. 개인상도 아닌 단체상에 강호동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진정한 대인배의 면모를 보였다. 이후 그는 내년에도 대상에 연연하지 않고, 다만 시청자가 뽑은 최고의 프로그램상을 받고 싶다고 속내를 비쳤다. 시청자들이 투표를 해서 선정하는 상이기에 그 어떤 상보다 값지다는 것을 아는 강호동다운 말이었다.
누가 대상을 타도 전혀 무리가 없는 톱 개그맨들은 이날 시상식의 조연을 자처했다. 자신들이 대상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김 없이 시상식에 왔고, 때론 강한 농담으로 때론 후배들을 위한 격려의 박수를 건네며 훈훈한 시상식을 만들었다. 상을 받지 않아도, 한 해를 돌아보는 시상식의 자리가 가진 의미를 누구보다 알고 있기에 톱 개그맨이라는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 jmpyo@osen.co.kr
[사진] KBS 연예대상 시상식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