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영화 ‘히말라야’(이석훈 감독)가 올 연말 산타 랠리의 수혜주로 떠오르며 겨울 극장가를 가열시키고 있다. 보통 여성들이 축구 다음으로 싫어한다는 산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개봉 전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겨울 성수기 시즌 역세권 영화로 입증된 셈이다. 이제 관심은 감독의 종전 흥행 기록(해적 866만)을 언제쯤 갈아치울지, 아니면 내친김에 또 한편의 천만 영화 탄생으로 이어질지에 모아졌다.
지난 16일 개봉한 ‘히말라야’는 성탄절 연휴 사흘간 175만명을 불러 모으며 누적 스코어 422만명을 기록했다. 꼭 1년 전 개봉한 ‘국제시장’과 엇비슷한 흥행 추이다. 이 산악 휴먼 영화는 개봉 후 줄곧 박스 정상을 차지했고, 2~4위를 기록한 ‘스타워즈7’ ‘몬스터호텔2’ ‘대호’ 등을 멀찍이 따돌리며 독주 체제를 굳혔다. 접전이 예고된 최민식 주연 ‘대호’와는 무려 5배 차이의 관객 수를 보이며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미 다큐로도 다뤄진 실화인데다 시신 송환이란 미션에 실패한 언 해피 엔딩, 여기에 비슷한 내용을 담은 외화 ‘에베레스트’의 흥행 부진 탓에 ‘히말라야’는 만듦새와 별개로 대박나긴 어렵지 않겠냐는 조심스런 전망이 있었다. 흥행작 산실 JK필름 제작에 CJ의 배급력이 결합한 만큼 어느 정도 손익분기점은 넘기겠지만, 이 정도의 폭발력이 있을 거라고 내다본 이는 많지 않았다.
‘히말라야’가 대중을 사로잡은 힘은 역시 눈물에 있었다는 분석이다. 아무런 보상이 따르지 않는 휴먼원정대의 고귀한 희생정신과 책임감, 숙연한 휴머니즘이 ‘돈 안 아깝다’는 입소문의 마중물 역할을 해낸 것이다.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나만 뒤처진 건 아닌가 하는 불안과 자책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이 모처럼 인간에 대한 예의의 소중함을 환기하게 됐다는 풀이가 나온다.
한 취준생 관객은 “뻔할 거라는 예상과 달리 엄홍길 대장님이 얼음 미라가 된 후배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오열할 때 나도 모르게 같이 따라 울었다”고 말했다. 욕망과 성공 강박에 갇혀 살았는데 목표를 이루지 못 한 실패자와 그를 끝까지 책임지는 동료들의 뜨거운 진심에 감동받았다는 설명이었다.
습관적으로 ‘좀만 더’를 외치며 모어(more)족으로 살았던 자신이 부끄러웠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있었다. 30대 여성 회사원은 “인생은 결국 가중치의 문제인데 지금까지 내가 아닌 타인의 욕망으로 살아온 건 아닌지 이 영화를 통해 돌아보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 중년 부부는 “황정민 덕분에 더 실감나게 영화를 봤다. 엄 대장에 빙의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명연기였다”고 치켜세웠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와 감독의 연출력이 완성도를 높인 일등공신이겠지만 ‘히말라야’의 흥행은 책임 회피와 남 탓부터 하고 보는 요즘 세태에 대한 반작용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잘못을 순순히 인정하면 융통성 없는 바보로 취급당하고, 끝까지 언성을 높여야만 손해 보지 않는 세상은 사회적 분노지수만 키울 뿐이다. 신파면 어떻고 감성 팔이란 오해를 받으면 어떤가. 좋은 메시지를 장착한 영화는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 돼 또렷하게 나를 비추는 법이다./bskim0129@gmail.com
<사진> 히말라야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