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톡톡]‘내부자들’ 감독판, 쾌감과 분노지수 더 높인 고농축 사회 고발극 ​
OSEN 손남원 기자
발행 2015.12.28 10: 38

[OSEN=김범석의 사이드미러] “정의? 대한민국에 아직도 그런 달달한 것이 남아있기는 허던가?”
밀랍 날개를 믿고 태양을 향해 비상하던 이카루스 상구(이병헌)는 복수를 다짐하며 급기야 이런 자문자답형 질문을 내뱉는다. 확고해진 이 결심의 본질이 놈들에 대한 보복인지 얄팍한 정의인지 아니면 둘의 보카시인지 명확하진 않지만, 적어도 이대로 사라져주지 않겠다는 결의만큼은 또렷하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이는 상구처럼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벼랑 끝 인간이다. 원래 짖는 개는 물지 않는 법이니까.

무려 50분이나 늘어난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은 예상대로 세 인물의 교차점과 연결 고리 보강에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감독판이라곤 하나 3시간이나 되는 확장 버전이 성수기 극장가에 걸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리뉴얼된 ‘내부자들’을 보면 우민호 감독과 세 주연 배우들이 전편 편집 과정에서 얼마나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것 같은 고통을 겪었을지 쉽게 짐작된다.
차량 폭파를 비롯해 공들여 찍은 장면이 아까워 적재적소에 끼워 넣은 신도 있었지만, 캐릭터 설명과 내러티브 연결에 꽤 중요한 장면들이 대거 보강된 덕에 우려만큼 지루하진 않았다. “모히또 가서 몰디브나 한 잔 하자”는 대목은 이미 봤음에도 웃음이 나왔고, 언제 새로운 장면과 대사가 튀어나올지 궁금하게 하는 긴장감도 3시간 내내 안배가 잘 되게 분사된 느낌이다.
상대적으로 우장훈(조승우) 검사 신이 상구와 이강희(백윤식)에 비해 덜 보강됐는데 이는 역설적으로 본편 편집 당시 그만큼 버릴 소스가 적었다는 얘기로 읽힌다. 편집할 수 없는 꼭 필요한 엑기스에 집중한 조승우의 몰입과 진가가 오히려 이번 감독판에서 거꾸로 증명된 것이다. 안상구와 이강희의 대결이 나쁜 놈과 더 나쁜 놈의 승부라면, 우 검사는 거친 이야기의 길잡이이자 반전과 쾌감을 도맡는다.
이번 디렉터스컷은 감히 이병헌을 위한 프로젝트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상구 캐릭터의 볼륨이 커졌다. 변두리 깡패였던 그가 어떻게 조국일보 이강희와 안면을 트고 승승장구 할 수 있었는지 보다 친절해졌다. 마치 압축파일이 풀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 이강희의 계략으로 신체가 훼손된 뒤 나이트클럽 화장실 웨이터가 되기까지 겪게 되는 정신병원 감금도 그려져 그의 복수와 결심에 더 힘이 실린다.
2년간 사생활 관련 사건 사고에 발목이 잡혀있던 이병헌이 이 영화로 배우로서 구매력을 회복하자 편집됐던 많은 장면들이 부활했다. 이병헌 리스크 때문에 봉인될 뻔한 주요 장면들이 마치 사면 복권된 것처럼 새 생명이 부여된 것 같아 더 흥미롭다.
감독은 대중들의 냄비 근성을 꼬집는 한편, 보수 언론의 섬뜩함도 펼쳐 보인다. 정치부 기자 출신 이강희 논설위원의 권력을 향한 사적 욕망이 사회에 얼마나 큰 해악이 되는지 보여주는 동시에 여론이 어떻게 조작되고 취사선택되는지도 실감나게 보여준다. 마치 ‘당신은 아직도 순진하게 정치 뉴스를 믿습니까’라고 묻는 것 같다. 비즈니스 파트너십으로 포장된 대기업과 언론의 이종 교배도 은밀하고 난잡한 성 접대 파티를 통해 통렬히 비꼰다.
단순히 러닝타임만 늘어난 게 아니라 보다 농축된 사회 고발극으로 재탄생한 것 같은 3시간이었다. 우화처럼 그려진 조국일보 편집회의 신에서 데스크 역으로 김의성과 ‘응답하라 1988’ 학생주임 유재명이 부활한 것도 반가웠다. 다만, 상영 시간을 감안해 이뇨 작용을 돕는 아메리카노 섭취는 삼갈 것을 권한다. 31일 개봉./bskim0129@gmail.com
<사진> '내부자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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