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홍의 첫인상은 한마디로 ‘꺼벙했다’. 두껍게 쌍꺼풀이 진 동그란 눈에 바둑알 같이 까만 눈동자는 가끔 초점이 없는 것처럼 보이곤 했다. 입술도 두툼했고, 코끝과 볼도 통통했다. 첫눈에 날카로워 보인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인상은 결코 아니었다. 심지어는 헤어스타일까지 덥수룩한 것이 배우가 맞나 싶기도 했다.
그러나 배우는 연기로 말하는 것이 맞았다. 몇 편의 독립영화 주연을 비롯해 숱한 단역들을 거친 안재홍이 영화 ‘족구왕’의 복학생 홍만섭 역으로 드디어 주목받기 시작했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꺼벙한 눈이 족구를 할 때만은 빛났다.
안재홍은 이 영화에서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지독한 순수를 입었다. ‘눈치 없음’ ‘오글거림’으로 치부될 지언정 밉지만은 않은 그 모습들을 완벽히 소화했다. 고준희가 본명 김은주에서 MBC ‘여우야 뭐하니’의 극 중 이름으로 예명을 쓰고 있는 것처럼, 안재홍도 홍만섭으로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후 지난 2014년 제작된 웹드라마 ‘출중한 여자’에서는 잡지 에디터 천우희를 좋아하는 오랜 친구로 등장해 설레는 장면들을 많이 탄생시켰다. ‘족구왕’ 홍만섭의 잔상이 남아있기는 했지만 의외의 로맨틱한 모습이었다. 점점 안재홍의 다채로운 얼굴이 궁금해지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그런 그가 tvN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로 대중의 뇌리에 제대로 각인됐다. 쌍문동 봉황당 골목의 졸부집 맏아들 김정봉으로 변신한 안재홍은 예상 밖의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뽐냈다. 복학생 홍만섭보다도 한층 더 꺼벙해진 얼굴, 초록색 ‘츄리닝’ 바지 안으로 집어넣은 노란 상의, 항상 손에 들려 있는 과자 봉지, 7수를 가능케 한 수집벽까지. ‘병약미소년’은 되지 못했지만 심장 수술을 앞두고 불안에 떠는 여린 모습에 괜히 한 번 더 눈길이 가기도 했다.
안재홍에게 홍만섭만큼이나 김정봉이 잘 어울리는 까닭은 그가 순수함을 누구보다 잘 연기하는 배우이기 때문일 것이다. 티없이 해맑아 보이는 외모와 표정은 차치하고라도 안재홍은 순수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몰입과 고집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 아무것도 재지도, 따지지도 않고 좋아하는 것을 향해 직진하는 강단은 그의 원래 성격같이 느껴질 만큼 자연스럽다. 보글보글에 심취했을 때도, 대학가요제 앨범을 모을 때도, ‘쌍문여고 장만옥’ 장민옥(이민지 분)과 첫 연애를 시작했을 때도 그랬다.
앞으로 4화를 남겨 두고 있는 ‘응팔’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남은 시간 동안 김정봉은 무엇이라도 해내리라 믿는다. 그것이 꼭 대학이 아니라도 좋겠다. 더불어 김정봉의 순수함을 너무나도 잘 연기해 준 안재홍의 앞날도 더욱 기대가 된다. /bestsurplus@osen.co.kr
[사진] ‘응팔’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