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정 감독 "'대호' 망설인 이유? 난 '청불'이니까" [인터뷰]
OSEN 정유진 기자
발행 2015.12.30 16: 51

 '대호'는 박훈정 감독에게 운명 같은 작품이다. 작가 시절 2주 만에 돈을 주고 팔았던 시나리오가 약 5년 후에는 자신이 연출할 세 번째 작품으로 돌아왔다. "(쓸 당시)이게 영화로 만들어질 것이라 생각은 안 했다"는  박 감독은 여러 부담감이 있었음에도 불구, 결자해지의 심정으로 작품을 맡았다. 겉으로는 "내 성향이 아니다"라고 툴툴대지만, 결과적으로는 묵직하면서도 의미있는 드라마가 완성됐고, 많은 관
객들이 감동을 표했다. 
'대호'는 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식 분)과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에는 우리 민족의 정기를 상징하는 호랑이 대호와 이를 잡으려는 일본군, 일본군을 돕는 조선 포수들, 대호와 정서적 교류를 하는 천만덕 등 다양한 '수컷'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뒤엉킨 이야기가 한 편의 누아르처럼 펼쳐진다. 

'대호'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박훈정 감독에게 전작 '혈투', '신세계'와 이 작품의 다른 점을 물었더니 "일단 등급?"이라는 간단명료한 답이 돌아와 웃음을 줬다. 
"12세 등급을 받았어요. 등급 차이가 제일 크죠. 12세까지 바란 건 아니었고, 일단은 이게 제작비가 100억이 넘게 들어가는 거니까 15세까지는 해야한다는 생각이 있긴 했어요. 그래서 당황스러워요.(웃음) 아마도 사람 간의 살상이나 그런 게 아니고, 자연의 어떤 것이니까 괜찮았나봐요."
'대호'는 박훈정 감독이 감독으로 데뷔를 하기 전, 시나리오 작가로서 썼던 작품 중 하나다. 그는 이 시나리오가 팔린 시기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는데, 자신이 쓴 작품 중 가장 '초고속'으로 팔렸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무려 2주 만에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다. '호랑이'라는 존재를 스크린 안에서 누가 봐도 믿을 수 있는 수준으로 '재탄생'시켜야 한다는 어려움만 빼면, '대호'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소재였다. 정작 박훈정 감독은 소재보다는 어마어마한 제작비를 들여야 하는 점이 큰 부담이었다고 했다.
"동물도 동물 나름이죠. 우리 나라 사람들이 호랑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그러니까 소재 자체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동물이 주인공이란 것보다는 제작비가 많이 들어서 부담이었죠. 이 정도 제작비로 최소 어느 정도 관객이 들어야 손해를 안 볻나는 것 때문에 부담이 됐어요. 제가 살면서 150억 짜리 영화를 할 줄은 몰랐네요. 이건 '신세계' 제작비의 3배인데, 그것에서 오는 부담이 있었어요. 그래도 소재 자체는 우리나라에서 특별히 더 매력적인 소재라는 자신감은 있어요."
어떤 과정을 거쳐, 이 작품은 박훈정 감독에게 되돌아 온 것일까? 
"그러니까 '대호'는 6년 전에 6월에 쓰고 바로 친한 감독님들과 제작자들한테 돌렸는데 연락이 와서 2주 만에 계약을 했어요. 그리고 나서 이 생각을 접었어요. 난 작가로서 이걸 팔았기 때문에, 이제는 제작사 몫이다 하고, 생각을 안 하고 있었는데, 이게 제가 처음 계약했던 데서 진행이 안 돼서 다른 데서 판권을 샀어요. 최종적으로 '신세계' 제작사가 판권을 다시 샀더라고요. 그 쪽에서 가져왔는데 '혹시 해 볼 생각없느냐'고 해서 저는 볼 생각이 없는데 '너무 하고 싶다'고 해서, 최민식 배우에게 시나리오가 가고, 뉴에서도 너무 하고 싶다고 하고. '하자, 하자. 니가 해.', 이래서 하게 됐어요. 안 하려 그랬죠. 부담도 많이 되고. 솔직히 성향도 제 성향도 아니고요. 전 '청불' 성향이니까요.(웃음)"
박훈정 감독은 영화를 찍으면서도 "이걸 내가 왜 하고 있지?", "이럴 줄 알았으면 계절이나 바꿀 걸 그랬다" 등등의 복잡한 생각을 했다고 털어놔 웃음을 자아냈다. 다행히(?) '신세계'가 잘 돼서 필요한 것들은 제때 지원이 잘 됐다고. 연출자로서 표현하고 싶었던 것을 그리는 것 역시 편했다. 때로는 밀린 숙제를 하는 듯한 느낌을 갖기도 했던 현장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안 힘든 척을 하는 것"이었다. 
"안 힘든 척 하느라 힘들었어요. 배우들이 (호랑이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힘들어 하면, 나까지 옆에서 힘들어 할 순 없으니까 '생각하면 되지. 여기 내가 여기 쳐다보는거야. 짝대기 끝을 쳐다보면 돼' 이렇게 말하면서 만들었죠. 마치 저는 다 알고 있는 척 하면서 해야하니까요. 초반에는 시행착오도 겪고 했는데, 속으로 '멘붕'이 올 때도 있었어요. 그 때마다 티를 내지 않고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렇게 했어요. 그렇게 하다보면 찍히겠지, 했죠. 감독이 '멘붕' 오면 현장이 '멘붕'이 되니까요."
그럼에도 박훈정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보다는 감독으로서의 삶이 '당연히' 더 좋다고 했다. 영화는 역시나 감독의 작품이라는 게, 두 가지 모두를 겪어본 그의 결론인 듯 했다. 여기에는 시나리오 작가를 하며 느꼈던 작가의 처우 개선에 대한 문제의식도 담겨 있었다. 
"시나리오 작가일 때는 그런 게 있어요. 쓰고 넘기면 그걸로 땡. 잘만들었든 아니든, 왜냐면 신경을 계속 쓰면 허탈한 경우가 많아요. 이게 시나리오 작가들이 감독이 되려고 하고, 드라마 작가로 가는 이유 중에 하나에요. 내가 쓴 시나리오를 가지고 영화를 해. 이야기의 힘이 있지만, 영화가 잘 되면 다 감독이 잘한 게 돼. 명예도 없고, 돌아오는 금전적인 보상도 없고, 상대적 박탈감도 많아요. 제일 힘든 건 시나리오를 줬는데 내 원고를 난도질할 때. 자기들 마음대로 고쳐요. 그래도 작가가 그 부분에 대해 태클을 걸 권한이 전혀 없죠. 물론 저는 작가일 때도 계약서 조항에 그런 걸 다 넣었어요. 잘될 경우에 러닝 개런티를 달라고 고집하기도 하고. 한국 영화계는 좋은 작가가 남을 수 없는 구조에요. 그래서 잘 쓰는 작가들만 보면, 작가만 하는 경우가 드물죠. 제작을 하거나, 연출을 하거나, 드라마를 하거나 그래요. 잘 쓴다 싶으면 다 그렇죠."
박 감독이 '대호'에 바라는 것은 한국 영화계에 다음번에도 의미있는 시도를 해볼 수 있는 어떤 '물꼬'를 틔워주는 것이다. 다음 작품은 소문만 무성한 '신세계2'가 될까? 그는 "금시초문"이라며 말을 아꼈다. 다만, 이 영화가 잘 돼야 '신세계2'도 나올 수 있다고 팬들에게는 협박(?) 아닌 협박을 하기도. 
"얼마나 들까요? 작품도 작품이지만, 상품이기도 한 상업 영화니까. 그 만큼의 가치도 인정을 받으면 좋겠고, 작품의 가치도 인정 받는 건 두말할 것도 없고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어야 한국 영화들이 이런 시도들, 그 전에 엄두를 못낼 시도들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영화가 디딤돌이 되거나 물꼬를 틔워 줬으면 좋겠네요. 저도 잘 돼야 다음작품도 하죠, 잘돼야.."/eujenej@osen.co.kr
[사진] 박준형 기자 soul1014@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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