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tvN ‘응답하라 1988’이 시작하자마자 시청자들은 덕선(혜리 분)의 남편 찾기에 나섰다. 여태 방송된 ‘응답하라’ 시리즈는 여자 주인공이 결국 누구와 사랑의 결실을 맺는지를 이야기의 가장 주요한 흐름으로 다뤄 왔기 때문이다. 이내 드라마팬 사이에서는 ‘어남류’라는 유행어가 돌았다. ‘어차피 남편은 류준열’이라는 것이다.
방송 초반만 해도 ‘어남류’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정환(류준열 분)이 ‘응답하라’ 시리즈 속 여자 주인공의 최종 남편과 유사한 느낌의 캐릭터이기도 했고, 이야기가 정환의 시점을 많이 비추기도 했다. 덕선과의 궁합도 훌륭했다. 그러나 택(박보검 분)의 존재감도 만만치 않았다. 정환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덕선에게로 무섭게 돌진하는 택의 모습에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최택)’ 설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직진하는 택의 앞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덕선을 향한 정환의 애정어린 시선을 목격한 것이다. 택은 정환의 마음을, 정환은 택의 마음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은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게 됐다. 그 사이, 복병이 등장했다. ‘쌍문동 5인방’ 가운데 가장 덕선과 티격태격하는 사이면서도 힘들 때는 항상 곁에서 무심한 조언을 건네던 남자, 류동룡(이동휘 분)이다.
떠올려 보자.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를 갖고 싶다며 소방차 춤을 연습하던 덕선을 비웃으면서도 결국 친구들을 데려와 대신 무대를 꾸민 사람, 식탐하면 빠지지 않지만 파르페를 처음 먹어 본다는 덕선에게 과감히 자기 것을 양보하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그 뿐인가. 덕선을 ‘특공대(특별히 공부 못하는 대가리)’라고 놀리지만 그 자신도 만만치 않게 공부를 못 한다. ‘쌍문동 5인방’ 중 덕선이 동지애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캐릭터다. 우울하다며 전에 없이 굶으려고 하는 덕선에게 밥을 먹이려고 손을 잡아 밥상머리에 앉힌 것도, 버스에서도 혼자 서 있던 덕선에게 “앉을래?”라고 물은 것도 동룡 뿐이었다.
하이라이트는 정환에게 용기내어 건넨 생일선물이 정봉(안재홍 분)에게 갔다는 오해를 하고 풀 죽어 있는 덕선에게 조언하던 장면이다. 물론 동룡은 여기서 “누가 너를 좋아하는 것 말고, 네가 누굴 좋아할 수도 있는 거야”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지만, 순간 심장을 내려앉게 한 포인트는 따로 있었다. “택이가 좋아, 내가 좋아?”라고 물은 뒤 택이라는 즉답이 나오자 “난 싫어?”라며 되물을 때의 표정. 가장 철없어 보이던 동룡의 반전 매력이 돋보였던 찰나였다. 덕선이 동룡에게 고민 상담을 하다 연인 사이로 발전한다는 추측도 현실 세계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그림이라는 생각이 불쑥 드는 대목이다.
덕선-정환-택의 삼각관계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됐다. 십대의 사랑 치고는 너무 아픈 고민들이 계속돼 안타까운 가운데 이제는 ‘어남류’의 ‘류’가 류준열이 아닌 류동룡의 머릿글자일 것 같다는 즐거운 상상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어차피 남편은 정환 아니면 택일 터. 아니, 어쩌면 류동룡일지도?/bestsurplus@osen.co.kr
[사진] ‘응답하라 1988’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