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과 김하늘의 첫 만남이라는 것만 놓고 본다면,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감독 이윤정)는 애절한 멜로드라마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섬뜩하게 들리는 배경음악이 깔리면서 영화는 점점 미스터리하게 흘러간다. ‘왜 기억을 잃게 됐는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관객도 남자 주인공을 따라 영화의 퍼즐을 맞추는데 머리를 굴리게 된다.
‘나를 잊지 말아요’는 교통사고 후, 10년간의 기억을 잃어버린 채 깨어난 석원(정우성 분)과 그 앞에 나타난 비밀스러운 여자 진영(김하늘 분), 지워진 기억보다 소중한 두 사람의 새로운 사랑을 그린 감성멜로다.
영화는 시작부터 의뭉스럽다. 사고 후 깨어난 석원은 자신의 인생을 3인칭 관찰자의 시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다행히 석원은 기억력이 좋은 편. 기억은 없지만 사고 전에는 사법고시에서 패스해 꽤 잘나가는 변호사로 활동했다. 기억은 없지만 사고 전 변호를 맡았던 김여사(장영남 분)의 사건도 계속 맡게 된다.
우연처럼 마주친 진영과 불같은 사랑을 하게 된다. 본능이 그녀를 받아들이듯 석원은 감정을 쉽게 조절하지 못해 약과 담배를 달고 사는 진영을 집으로 들이고 함께 생활하게 된다. 일상을 나누는 두 사람의 비주얼은 말할 필요 없이 훌륭하다. 멜로 장르가 충족시키는 판타지적인 측면으로만 보자면 정우성과 김하늘은 100점 만점에 100점을 주고 싶다. 투샷만으로도 연애세포를 깨우기 충분하다.
석원의 친구 역으로 나오는 배성우도 자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일단 충무로의 ‘떠오르는 소’로 꼽히는 배성우의 등장만으로도 관객들은 잔잔한 미소를 짓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가 던지는 소소한 위트도 영화를 너무 무겁지만은 않게 이완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석원의 사고 당시 차안에서 발견된 퍼즐은 그의 흩어진 기억의 조각을 상징한다. 이처럼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다. 인생에서 과거의 기억이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될까. 그 기억 없이 현재에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까. 나쁜 기억도 그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닌 것일까 아니면 잊은 채 살아가는 것이 더 좋을까. 영화를 본 후 함께 고민해볼 부분이다.
영화 속에는 퍼즐 외에도 나름의 복선 장치가 곳곳에 담겨 있다. 결정적인 복선은 아니지만 나중에 돌이켜 보면 ‘아, 그래서’ 라고 깨닫는 정도는 된다. 예상 가능한 결말이 펼쳐지기는 하지만 영화는 애초에 반전의 효과를 노리기보다는 잔잔함에 초점을 맞춰 싱겁지만은 않다. 자극적인 맛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나를 잊지 말아요’처럼 모든 긴장을 풀고 편하게 볼 영화가 분명 필요한 시점이다. / besodam@osen.co.kr
[사진] '나를 잊지 말아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