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응답하라 1988'의 전개는 정말로 지지부진한 것일까. 물론 드라마적으로는 늘어지지 않는, 잘 짜여진 구도가 필요한 것은 분명하지만 '빨리 둘 중 선택을 하라'는 연애 강요(?)는 굳이 필요해보이지 않는다. 이 드라마의 주제가 그것이 아닐 뿐더러 사실상 그 당시의 정서를 살려 '느림의 미학'을 담는 것 역시 하나의 선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응답하라 1988'에서는 덕선(혜리)과 그의 남편 후보들인 정환(규준열)과 택(박보검)이 느슨한 삼각 구도를 이루며 전개에 흥미를 돋우지 못하고 있다는 일부 부정적인 반응을 볼 수 있다. 이 반응의 중심에서는 '남편 찾기'가 응답하라 시리즈 고유의 주제인 만큼, 빨리 속도를 내길 바란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응답하라 1988'은 주제 면에서 전작과 확실히 달리하는 지점이 있다. 주인공이 누군지 모르겠다는 반응은 달리말하면 이 드라마가 폭넓은 인물군상을 다룬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드라마는 주인공들의 러브라인 만큼 신경 쓰는 것이 쌍문동 동네 사람들의 스토리다. 지금은 일면 퇴색해 버린 '이웃사촌'이란 말을 상기하게 만드는 이 드라마의 가치는 이성간의 사랑보다는 '정'에 있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덕선과 남자들이 러브라인 만큼 우정이란 이름의 남자들의 애정 관계에도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정환과 택은 극에서 덕선과의 그것 못지않은 절절한 멜로를 지닌다. 이는 전작 '응답하라 1994'와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정서는 느리다. 주인공들의 감정도, 결정도, 행동도. 스피드를 내는 사랑 대신 오랜시간 겹겹이 쌓여 온 정이 지배하는 그 시대 정서의 드라마에서 고등학교 3학년생들에게 불꽃같은 사랑을 바라는 것 역시 어찌보면 무리다.
상기해보면, 그 때 그 시절은 (지금보다는)천천했다. 몇회 째 진전되지 않고 그 자리를 맴도는 듯한 러브라인은 그래서 더욱 진정성을 갖기도 한다. 대신 드라마는 주변 인물들-선우(고경표)와 보라(류혜영), 정봉(안재홍)과 미옥(이민지), 무성(최무성)과 선영(김선영)-에게 보다 빠른 속도의 러브라인을 제시하며 답답해하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일면 달래고 있다.
더불어 드라마는 다음주부터 1994년으로 시대가 점프할 예정. 고등학생으로 나오던 주요 캐릭터들은 자연스럽게 모두 성인으로 등장한다. 시청자들에게는 '어남류', '어남택'보다 이 시점에서 더 궁금하고 또 덕선에게도 더 간절한 것은 러브라인 보다도 대학 진학 여부라는 미래 얘기다.
한편 '응답하라 1988'은 오는 1월 1일과 2일 숨고르기를 한 뒤, 8일과 9일, 15일과 16일 4회 방송을 끝으로 종영한다. / nyc@osen.co.kr
[사진]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