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만큼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역사 인물이 또 있을까. 자신의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철혈군주이자 조선의 3대 왕인 태종이 현재 두 드라마에 등장하고 있다. 하나는 ‘육룡이 나르샤’ 유아인이 연기하고 있고, 하나는 ‘장영실’ 김영철이 표현하고 있다.
KBS 1TV 대하 사극 ‘장영실’이 드디어 막이 올랐다. 과학 드라마이자, 믿고 보는 KBS 1TV 사극, 거기다가 ‘삼둥이 아빠’ 송일국이 장영실을 맡았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았다. 지난 2일 뚜껑이 열린 이 드라마는 세종(김상경 분)과 그가 발탁한 장영실(송일국 분)의 인연이 그려지기에 앞서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김영철 분)의 불안한 왕권으로 인해 폭정을 일삼는 이야기가 담겼다.
일식을 계기로 자신의 불안한 입지를 공고히 하려고 했던 태종은 천문학자들이 일식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죽이려고 했다가 왕자들의 만류로 간신히 참았다. 왕의 자리를 침탈한 것에 대한 정당성이 부족해 예민하고 고뇌하는 일이 많은 태종은 단 1회에 완벽하게 표현됐다.
김영철의 불안한 감정이 모두 담긴 눈빛 연기는 안방극장을 압도했다. 김영철의 태종 이방원 연기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대왕세종’에서 한차례 태종을 연기해 카리스마를 뽐냈다. 또 다시 태종으로 분한 김영철은 쟁쟁한 연기파 배우들이 연기했던 태종을 자신만의 색깔로 완벽히 표현했다. 그가 연기하는 태종은 인간적이면서도 폭군의 기색이 여실히 드러나 시청자들을 짠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유아인은 SBS ‘육룡이 나르샤’에서 젊은 이방원을 연기하고 있다. ‘장영실’이 조선 초기를 다루고 있다면, ‘육룡이 나르샤’는 조선이 세워지기까지의 고려 말 혼동의 시기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굵직한 작품에서 나온 태종을 연기한 배우들 중에 가장 젊은 시절을 표현하는 중이다.
‘육룡이 나르샤’는 젊은 이방원의 적극적이면서도 개혁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다소 성미 급한 성격을 ‘폭두’라는 단어 하나로 설명했다. 정식적인 절차를 밟아 차근차근 수행하는 것보다 단 번에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강한 이방원을 옆에서 자제시키는 일은 정도전(김명민 분)이 맡고 있다. 이방원이 추후 왕이 되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릴 것인지를 예감하게 하는 복선을 깔아두고 있다.
유아인은 젊은 태종을 연기하며 아직 미숙하지만 순간순간 섬뜩한 면모를 드러내며 개연성을 입히고 있다. 심지어 사랑하는 여자 분이(신세경 분)가 천한 신분에도 점점 민초들의 권력의 중심에 서자 불안해 하는 모습을 표현하며 향후 이방원이 태종이라는 철혈군주가 되는 데 설득력을 부여하고 있다.
‘육룡이 나르샤’와 ‘장영실’은 방송사도 다르고 하고자 하는 이야기도 다르다. 다만 두 드라마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태종이라는 인물은 자연스럽게 연결 지점이 있다. 유아인이 연기하는 이방원을 보며 ‘장영실’ 태종의 캐릭터에 설득력이 부여되고, 김영철이 연기하는 이방원을 보며 ‘육룡이 나르샤’ 이방원의 미래를 예측하게 된다. 마치 한 드라마에서 청년과 중년을 나눠서 연기하는 것처럼 보는 재미가 있는 것. 두 드라마를 모두 시청하는 이들에게는 두 배우가 연기하는 태종 이방원의 매력을 살펴보는 즐거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 jmpyo@osen.co.kr
[사진] KBS, SBS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