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에게 한계란 없다. 요즘 배우들은 외모 등 겉으로 보여지는 자신의 조건과 상관없이 '잘생김'과 '못생김'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며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준다. '잘생김'을 연기한다는 tvN '응답하라 1988'배우 류준열을 비롯 KBS 2TV '오 마이 비너스' 신민아, MBC '그녀는 예뻤다' 황정음 등이 '못생김' 연기로 되려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사랑 받았다.
청순미의 대명사 배우 문채원은 영화 '그날의 분위기'(조규장 감독)에서 보편적인, 혹은 그보다 조금 더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평범한 여성을 연기한다. 물론, 극 중에서도 그는 남자주인공 재현(유연석 분)이 한 눈에 관심을 가질만큼 아름다운 인물로 묘사되지만, 로맨틱 코미디에 어울릴만한 통통 튀는 '매력녀'는 아니다.
문채원이 연기한 '그날의 분위기' 속 화장품 회사 마케팅 팀장 수정은 오래된 것을 버리지 못하는 '미련퉁이'다. 걸핏하면 꺼지는 노트북을 '의리'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10년 사귄 남자친구에게 이미 마음이 식었음에도 정 때문에 쉽사리 이별을 택하지 못한다.
그런 그를 흔드는 것은 KTX에서 우연히 만난 스포츠 에이전트 재현이다. 재현은 자신의 옆에 앉게 된 수정에게 자신의 샌드위치를 불쑥 나눠주고, 수정이 먹고 싶어하는 바나나 우유를 사다주며 관심을 표현한다. 하지만 10년된 남자친구와의 의리가 있는 수정은 창밖으로 고정된 시선을 좀처럼 바꾸지 않는다. 급기야 재현은 "웬만하면 그쪽과 자겠다"고 수정을 도발하고, 수정은 그 말에 불쾌해 하며 자리를 옮겨 다닌다.
이처럼 수정 캐릭터는 소심하면서도 보수적인 '평범녀' 그 자체다. 보통 때 같으면 절대 모르는 남자의 대시에 흔들릴만한 사람이 아니지만, 갑작스럽게 고장이 나버린 기차 때문에 재현과 동행하게 된다. 우연이 반복되면 운명이라 했던가. 뼛속까지 '철벽녀'였던 수정은 재현과 얽히고설키며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난처한 상황에 처한 평범한 여성을 표현하는 문채원의 연기는 보는 이들의 공감을 자아낼만큼 자연스럽고 그럴듯하다. 흔들리면서도 철저히 생각을 지키려 자신의 마음을 부여잡고, 원나잇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을 말하는 재현에게 '사랑'에 대한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그는, 그야말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캐릭터다.
수정에 대한 문채원의 생각도 이와 같았다. 그는 최근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수정은) 매력을 느낄만한 요소가 별로 없는 캐릭터"라며 처음에는 이 배역의 선택을 놓고 망설임이 있었음을 알렸다. 이어 문채원은 "이런 스타일의 친구한테는 매력을 못 느껴서 매력점을 넣으려고 하는 게 포인트였다"며 "보면 되게 심심하고 답답하고 보수적인 캐릭터다. 제일 평범하다. 제일 평범하고 영화, 드라마 통틀어 대한민국에 가장 많을 수 있는 여자라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그런 문채원이 이 역할을 맡은 것은 이 평범함 때문이었다. 그는 "평범한 역할을 맡은 것에 의미를 두고, 그런 인물을 어떻게 살려 연기를 잘할수 있을까 생각을 했다"며 "갑자기 안 쓸 것 같은 표정을 쓸 수 있는 부분을 넣는다던가, 이런 것들을 요만큼, 아주 조금씩 넣었다"고 캐릭터 표현에 대해 설명했다.
'평범함'을 연기한다는 것은 조금 위험한 일일지 모른다. 그야말로 너무나 익숙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매력이 없도록 느끼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채원은 평범한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연기하면서 공감을 끌어내는 동시, 작은 표정 변화나 말투 등으로 수정이 가질 수 있는 사랑스러운 면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이는 능글맞은 바람둥이 재현 역을 맡은 유연석의 연기와 어울려 시너지를 일으켰고, 결과적으로 관객들이 공감을 느낄만한 '로맨틱 코미디'가 탄생하는 데 기여했다. /eujenej@osen.co.kr
[사진] '그날의 분위기' 스틸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