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이경규가 ‘무한도전’에 출연해 새해 벽두부터 빵빵 터뜨리는 웃음을 선사했다. 특유의 버럭 화를 내면서도 재치가 녹아 있는 남다른 구력으로 쉴 새 없이 웃겼다. 예전 같으면 패널이나 게스트로 출연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가리지 않겠다고 말을 하는 이경규는 시종일관 시청자들을 웃게 하며 데뷔 36년 예능인의 내공을 보여줬다. 더욱이 정형돈의 잠정 하차로 빈자리가 생긴 '무한도전'에서 비정기적인 출연을 하면 좋을 강력한 히든카드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지난 9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마련한 예능 총회 게스트로 나왔다. 2015년 예능을 진단하고 2016년 판도를 예측하는 토론의 장에서 가장 빛난 것은 이경규였다. 그는 시작부터 너무 많은 출연자가 나오는 것에 대한 불만, 녹화 시간이 길다는 불평, 출연자들의 농담 하나하나에 발끈하며 웃음을 만들었다.
이경규는 1981년 데뷔한 후 줄곧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예능 대부. 2000년대 초반 강호동과 유재석이라는 막강의 투톱 MC 시대에도 이경규는 진행을 이어오고 있었다. 혼자 한 프로그램을 이끌 수 있고, 공개 코미디부터 스튜디오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그리고 2000년대 이후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까지 그 어떤 장르도 가리지 않고 섭렵한 유일무이한 예능인이다.
이경규와 동시대에 활약했던 예능인들이 모두 주춤한 가운데 홀로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등 톱 MC들과 이름을 나란히 할 수 있는 예능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기도 하다. 늘 화를 내고, 늘 짜증을 내는 진행을 하지만 정겨운 맛이 있어 편안하게 웃을 수 있는 예능인이다. 솔직한 화법, 그리고 빠른 상황판단력, 자신을 적당히 비하하면서도 상대방의 약점을 파고들며 만드는 재미가 있다.
이번 ‘무한도전’이 마련한 예능 총회에서도 이경규는 시종일관 후배들과 티격태격했다. 후배들의 공격에 발끈하기도 하고, 후배들의 약점을 지적하며 시청자들을 통쾌하게 했다. 자신 역시 함께 농담받이가 되는 까닭에 그의 독설이 불편함을 안기지 않는다. 노련한 방송인이기 때문에 적당히 자신을 웃음 대상으로 만드는데 일가견이 있는 것. 김구라는 거침 없이 망가지면서도 순간순간 화를 내며 재미를 선사한 이경규에 대해 방송 말미 이렇게 말했다.
김구라는 “이경규 씨는 일단 웃기는데 최고다. 괜히 정리 안 되는 것 정리하시지 마시고 이제는 패널로서 거듭나길 바란다”라면서 MC 뿐만 아니라 패널로서 활동 영역을 넓히라고 조언했다. 언제나 톱 MC의 자리를 지켜왔던 까닭에 패널 출연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수 있지만, 이제는 다방면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냉철한 판단이 곁들어 있는 농담이었다.
이경규 역시 “내가 ‘복면가왕’을 보면서 그 생각을 했다. MC 못할 바에야 패널로 있으면 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제는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가릴 게 없다”라고 패널로서 프로그램에 출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물론 그는 이날 녹화 시간이 길다면서 유재석에게 투정을 부리고 짜증을 내며 평소와 다름 없이 불평과 불만이 많은 예능 캐릭터를 보여줬지만 달라진 게 있었다.
이 같은 패널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은 변화하는 예능 흐름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그의 노련한 내공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경규의 웃기기 위한 짜증에 배려의 진행으로 유명한 유재석마저 호통을 치며 큰 웃음을 안기는 상황을 만들 정도로 이경규가 가진 웃음 원동력은 여전히 크다.
때문에 패널과 MC 가리지 않고 활동을 한다면 그를 보며 웃을 일이 더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바. 일단 ‘무한도전’에서 크게 웃긴 만큼 조만간 재출연을 해서 또 다시 ‘레전드 웃음’을 만들어주기를 기대하는 이들이 많아 보인다. 10년 전 퀴즈를 풀 때 출연해서 박명수와 치고받는 웃음으로 대박을 터뜨렸던 그가 간만에 미친 듯이 웃었다는 시청자들의 호평을 이끌어냈으니 말이다. 더욱이 박명수도 기죽는 호통 개그는 새로운 캐릭터 조합이 필요한 11년 장수 예능 ‘무한도전’에서 필요한 웃음 장치이기도 하다. / jmpyo@osen.co.kr
[사진] '무한도전' 방송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