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쎈 초점] ‘응팔’ 류준열 사랑, 끝일까 시작일까
OSEN 라효진 기자
발행 2016.01.10 11: 30

 그는 품에서 ‘피앙세 반지’ 따위의 달짝지근한 이름이 붙은 것을 꺼냈다. 그리고는 눈 앞의 그녀에게 내밀었다. 어른처럼 차갑고 건조한 눈빛에 금세 온기가 돌았다. 내 신경은 온통 너에게 쏠려 있었다, 며 ‘그녀 관찰기’를 읊는 그의 얼굴 곳곳에 웃음이 묻어 있다. 마지막 한숨처럼 토해낸 고백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이었다. 이후 잠깐의 진공 상태. 묘하게 불편한 적막을 깬 것은 의외로 그였다. 평생 고백 한 번도 못 해 보고 죽을 새끼라는 말이 듣기 싫어 한 장난이었단다. 가짜 폭소와 어색함이 마구잡이로 뒤섞인 그 와중에도 문가에 들리는 인기척에 그녀의 시선이 그를 비껴갔다. 결코 부딪치지 않는 시선. 그는 반지와 함께 첫사랑을 테이블 위에 둔 채로 밖을 나섰다.
지난 9일 방송된 tvN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 18회의 부제는 ‘굿바이 첫사랑’이었다. 덕선(혜리 분)의 첫사랑은 이미 끝이 난 터라 택(박보검 분)과 정환(류준열 분), 둘 중 한 명의 이야기임을 짐작케 했다. ‘응답하라’ 시리즈 전작들에 비춰 봤을 때, 택이 아무리 무섭게 치고 올라오더라도 ‘어차피 남편은 류준열’이었다. 애초 이 드라마는 정환의 시점으로 시작된 이야기이기도 했고, ‘응팔’ 속 이성적 긴장감이 흐르는 장면들도 주로 덕선과 정환 사이에 할애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현실보다 잔혹했다. 18회에서 정환은 내내 망설이다가 한 번도 덕선을 당기지 못했던 자신을 원망했다. 여태 “소개팅 하지마” 말고는 그가 잠깐이라도 덕선을 향한 마음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 후로 5년을 덕선의 얼굴, 택의 얼굴을 아무렇지 않게 마주 보면서 정환이 겪었을 아픔과 자책을 감히 상상하기 힘들 정도다. 그래도 이대로는 잘 지낼 수 없었다. 정환은 덕선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운명의 다른 이름이라는 타이밍은 택의 편이었다. 또 한 번 망설이는 사이 운명이 그를 등진 것이다.

정환은 마지막으로 용기를 냈다. 친구들이 모두 모여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너랑 같이 학교 가려고 매일같이 대문 앞에서 한 시간 넘게 기다리고, 독서실에서 집에 올 때까지 걱정돼서 한숨도 못 잤다고 말했다. 수학여행 전부터,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덕선을 좋아했었노라고 고백했다. 덕선은 원래 알고 있던 남의 이야기를 듣듯이 그저 웃는다. 모든 것이 장난이었다는 정환의 말에도 덕선의 얼굴에는 잠깐의 씁쓸함이 비쳤을 뿐이었다. 정환은 호프집 문으로 들어올 택을 기다리는 듯한 덕선을 발견했다. 그때 소년 정환은 소녀 덕선을 보낼 수밖에 없음을 직감한다.
고백 장면에 스민 감정의 농도로는 여느 명작 못지 않았다. 그러나 정환의 고백 뒤로 이어지는 과거 회상 장면은 너무도 아팠다. 마당에서 올림픽 퍼레이드 연습을 하는 덕선을 몰래 훔쳐보던 정환, 덕선에게 우산을 건네며 “일찍 다녀”라고 말한 다음 문 뒤에서 뿌듯함에 미소 짓는 정환까지 우리가 모르는 그의 모습들이 있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의 파편들이 가슴을 저몄다.
정환의 ‘첫사랑’이 끝이 났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덕선을 향한 마음이 끝났다고는 누구도 잘라 말한 적 없다. 너무 슬픈 대사이긴 했지만, ‘응답하라 1994’ 속“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라는 대사가 떠오른다. 이 명대사가 ‘응팔’에서는 의미를 달리 할 수 있을까. 그가 끝끝내 반지와 함께 두고 갈 수밖에 없던 마음은 누구에게로 돌아갈까. /bestsurplus@osen.co.kr
[사진] ‘응팔’ 홈페이지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