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드라마 '응답하라'가 3번의 시리즈를 거치면서, 확 변했다. 늘 그저 그렇게 똑같을 것이라 여겨졌던 '남편 찾기' 코드가 여전히 질리지 않는 건, 그 명확한 진화 때문이다.
'응답하라' 시리즌는 늘 현재의 남편 찾기 과정에서, 상대적인 성향의 경쟁자를 삽입했다. 다만, 중후반부에 가서는 특정 캐릭터, 예컨대 '응답하라 1997' 윤윤제(서인국), '응답하라 1994' 쓰레기(정우)에게 무게중심이 쏠리며, 다 알면서도 그 과정을 확인하는 재미에 그쳐야만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다.
현재 2회 만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여전히 덕선(혜리)의 남편이 정환(류준열)이 될지, 택(박보검)이 될지 갈팔질팡하다. 이는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 18회의 갑작스런 우회 때문이다. 누가봐도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라고 호언장담하던 시청자들도, 이제는 택(박보검 분)과 그 상대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시청자들은 '충격'에 빠졌다.
초반부터 정환(류준열 분)은 덕선의 첫사랑 선우(고경표)와 경쟁했고, 선우의 탈락에 힘입어 남편 자리를 굳히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조용했던 택(박보검)이 새로운 경쟁자로 치고 올라와 또 다시 경합을 벌이는 분위기를 유지했다. 그래봤자 '어남류'라는 증거들은 쉴 새 없이 쏟아졌고, 택이를 응원하는 이들도 이에 수긍하는 듯한 부위기도 형성됐다.
그랬던 '응답하라 1988'이 1994년으로 시간이 껑충 뛰자, 예상 밖의 전개를 내놓았다. 아직 이렇다할 러브라인의 진전을 펴지도 못한 채 훌쩍 성인이 되어버린 순수한 쌍문동 아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한 채 주저하고 또 주저했다.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한 정환도 마찬가지다.
9일 방송된 '응답하라 1988' 18화 '굿바이 첫사랑' 편에서는 공사 졸업때 받은 '피앙세 반지'까지 내놓으며, 묵혀뒀던 고백을 풀어내는 정환에게 환호성을 내지른 것도 잠시, 이내 장난인 것처럼 반전된 상황은 많은 이를 한순간 허탈하게 만들었다. 흐르던 눈물이 무색해질 정도였다. 덕선이 정환의 진심을 읽었는지 뭔가 아리송한 표정도 지었지만, 택이가 오는지 확인하는듯 시선이 출입구에 꽂히는 모습이 이같은 기대마저 무너지게 했다.
더욱이 방송초반 누가 봐도 정환의 현재 모습일 것만 같았던 덕선의 현재 남편(김주혁 분)의 태도도, 갑자기 택이의 현재처럼 다정자감하게 변화한 것도 엄청 신경 쓰인다. 때문에 '무조건 남편은 정환'이라고 호언장담했던 이들도, '설마 택이가 남편인가'를 머릿 속에 떠올리게 만들었다.
남편이 '택'이라면, 이는 반복된 '응답하라'의 전형을 완벽하게 벗어난 첫 번째 시리즈가 되는 셈이다. 윤윤제(서인국), 쓰레기(정우)로 이어졌던 까칠하지만 마음은 일편단심이었던 '츤데레' 스타일의 캐릭터가 아닌, 매번 사랑의 실패를 맛봐야했던 다정다감한 캐릭터가 여주인공을 차지하는 첫 번째 승리로 기록되는 것. 시대를 바꾸고, 비중은 달리했지만 늘 비슷한 패턴을 벗어나지 않았던 '신원호·이우정'호의 전형 탈피다.
이제는 2회 분량이 남았다. 이제껏 너무 뻔한 결말이라 지적당했던 것을 정말로 뒤집을지, 아니면 '뻔하다'는 시청자의 뒤통수를 가격하기 위해 일부러 역대급 반전을 심어둔 모양새일지는 다음주 방송분량을 확인해야만 가능할 예정. 어쨌든 현 상황에서는 덕선의 남편이 정환이 되든, 택이가 되든 후폭풍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것을 노린 거라면, 이번은 '응답하라 1988' 제작진의 승리다. / gato@osen.co.kr
[사진] '응답하라 1988'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