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민성욱은 소속 극단인 차이무의 20주년 공연인 '원 파인 데이' 마지막 공연을 마친 직후임에도 불구하고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유쾌한 성격을 드러냈다. 깨알 같은 재미를 전해주던 드라마 속 캐릭터가 고스란히 살아 움직이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연기에 대한 생각을 전하는 시간 안에서만큼은 시종일관 진지했다. 겸손하게 자신의 연기관을 밝히는 민성욱은 작은 것 하나도 허투루 생각하지 않는 소신 있고 믿음 가는 연기자였다.
민성욱은 현재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극본 김영현 박상연, 연출신경수)에서 이방원(유아인 분)의 심복이자 고려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무사인 조영규 역을 맡고 있다. 이성계(천호진 분)의 사병 출신으로 이방원을 지켜주는 임무를 맡았다. 이방원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할 만큼 그를 믿고 따르는 인물이다.
50부작의 긴 드라마를 지금까지 안 해봐서 체력적인 힘겨움을 처음 느꼈다는 민성욱은 "저희 팀은 연출팀, 배우들 모두 호흡이 잘 맞아서 진행이 상당히 빠른 편"이라며 "호흡이 긴 드라마라 지치지 않으려 더 스피드있게 가자고 한다"고 설명했다. 또 한 번에 연기적인 모든 것을 쏟아내기 때문에 허비하는 시간이 없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촬영을 하다 보면 중간에 지치는 부분이 있다. 물리적인 시간 때문인 것 같다. 16부를 하다가 20부를 하게 됐을 때, 늘 끝나야 하던 때에 안 끄나니까 한 번씩 체력적으로 지치는 시간이 온다. '육룡이' 시작할 때도 이 부분이 가장 걱정이 많이 됐다."
영규는 극에 많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존재감 하나만큼은 육룡 부럽지 않을 정도로 임팩트가 강하다. 방원은 물론이고 무휼(윤균상 분)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으로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하면서도 방지(변요한 분)와는 도화전 전투신에서 완벽한 액션 호흡을 맞춰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도화전 전투신에서 방지와 "살아서 돌아가자"고 말하며 씨익 웃는 장면이 굉장히 멋있었다고 언급하자 민성욱 역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변요한이 아이디어를 냈었다. 그래서 '그래? 네가 그런 대사를 하면 나는 웃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대답을 나중에 하면 어떨까. 나중에 내가 다시 말을 하면 너 또한 웃을 것 같다'라는 대화를 했다. 대본 없이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진 장면이다"라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방지, 무휼과 셋이서 공통분모를 가지게 된 장면이다. 서로 주고 받는 진한 상황이 됐기 때문에 다들 만족하면서 찍었던 것 같다. 교감이 잘 됐다. 그 때 하루 밤 지새고 반나절 정도 걸려 촬영을 했었는데, 따라놓은 물이 다 얼 정도였다. 처음 찍을 때는 영하의 날씨였다."
그리고 민성욱은 무휼과 함께 도화전으로 들어갈 때 총총총 뛰어가던 장면 역시 애드리브로 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어린 방원이와 도화전을 갔을 때 입었던 옷을 다시 입었었다. 그런 연장선에서 이 조영규라는 친구를 만들어 가고 있다"며 "대본 나오자마자 의상팀에게 물어봤더니 그 옷을 입자고 하더라. 이렇게 서로 합이 잘 맞는다"고 '육룡이 나르샤' 팀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다시 한 번 언급했다. 또한 그는 "사실 그런 장면들은 잠깐 지나가는 것인데, 시청자들이 그걸 어떻게 보시는지 참 신기하다. 재미있는 것 같다"며 자신이 고심해서 구축해온 장면들을 알아채 주는 시청자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제 해석으로 움직였던 부분을 감독님이 써주시고 시청자들이 봐주셨을 때는 혼자 뿌듯해 하곤 한다. 남들은 몰라도. '이러 나의 해석이 맞구나'라는 만족감이 생긴다. 그래서 애드리브도 극에서 벗어나지 않는 정도의 선에서 평소 생각을 많이 해둔다. 도화전에 들어갈 때도 요한이와 얘기를 많이 나눴다. 자기를 한 번 쳐주면 안 되냐고 그러길래 이 때는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쳐주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서로 도와주는 경우도 많다."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처음 전체적인 톤을 잡을 때 "높낮이가 컸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줬었다고 밝힌 민성욱은 "모든 것을 긴 호흡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스스로 고민해서 구축해온 것을 감독님은 또 믿어주신다. 의견을 드리면 '해봅시다'라고 해주신다. 만약 찍고 나서 아니다 싶으면 또 다르게 해보자고 하고. 그렇게 믿어주시고 추진력도 상당히 좋으신 편"이라고 극을 이끄는 신경수 PD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제가 작품을 골라서 하는 입장은 아닌데, 제의를 주시면 그 안에서 많은 것을 뽑아내려 노력하는 편이다. 특색을 내기 위해 과하지 않게 표현을 하고, 장면을 만든다. '육룡이 나르샤' 전작이었던 '너를 기억해'에서도 처음에는 누르는 역할이었는데 촬영하다 보니 안 될 것 같아서 감독님과 얘기를 나눈 뒤 활동적인 친구로 바꾸게 됐다."
이렇게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을 해왔음에도 민성욱은 여전히 카메라 앞에서 긴장을 하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워낙 연출님, 촬영 감독님들이 편하게 해주시니까 많이 적응이 되긴 했는데 여전히 긴장을 하게 된다.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많다"며 "그리고 카메라 앞이 편해지면 재미없지 않겠나. 긴장을 하고 있는 이 상태가 좋다"고 배우로서 카메라 앞에 서는 마음가짐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현장에서 연기 호흡을 맞추는 연기자들에 대한 애정 어린 마음도 드러냈다. 그는 "유아인은 영리한 친구인 것 같다. 미세하게 표현을 잘 한다. 되게 예민하고 에너지도 많다. 즐겁다. 또 윤균상, 변요한과는 현장에서 떠들다가 혼나기도 한다. 수다를 정말 많이 떤다. 현장 한 번 와보시면 얼마나 재미있는지 알게 되실거다. 신세경, 이초희는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주고 있고 홍대홍 역의 이준혁 역시 정말 재미있다"고 설명하며 방긋 웃었다.
마지막으로 배우 민성욱을 표현할 수 있는 한 마디를 물었다. 이에 민성욱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항상 열심히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싶은 배우로 보였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사람들이 '민성욱은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해석을 가지고 있구나. 지치지 않고 노력을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길 바란다. 똑같은 역할로 나오더라도 노력해서 바꿀 수 있는 배우였으면 좋겠다. 그게 저의 숙제인 것 같다. 비슷하고 겹치는 부분도 바꿀 수 있도록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parkj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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