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인 김숙의 이상형은 늘 한결 같았다. ‘조신하게 집에서 살림 잘 하는 남자’. 처음에는 우스갯소리인 줄만 알았던 그 말은 김숙을 남성 일색의 연예계에서 전복의 상징으로 자리잡게 했다.
김숙은 지난 9일 방송된 MBC ‘무한도전’에서도 할 말을 했다. 지난해 예능계를 정리하는 ‘예능총회’ 특집에서 김숙은 “2015년은 남자들 판이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쿡방’의 유행을 언급하며 “셰프도 남자들만 나왔다”고 덧붙였다. 진행을 맡은 유재석 역시 “‘연예대상’ 후보도 전부 남자였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작금의 예능계에 만연한 성비 불균형을 짧게나마 언급하고 넘어간 대목이었다.
그러면서 김숙은 “송은이가 요즘 일이 없어지니까 ‘이 길이 아닌 것 같다’며 적성검사를 했다”고 밝혔다. 20년이 넘는 세월을 예능계에 몸담았지만 여성 예능인의 활로는 아직 열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송은이가)43살의 나이에 엑셀을 배우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씁쓸함이 남았다.
김숙이 방송에서 보여준 모습들은 시종일관 동일했다. KBS 2TV ‘1박2일’에서 데프콘이 “숙이 누나 운전할 줄 알잖아?”라고 미심쩍은 듯 묻자 “후진이 80km/h다”라고 하는가 하면, JTBC ‘님과 함께 시즌2’에서는 윤정수에게 “남자는 그러는 것 아니다” “갖은 남자짓 다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래 전부터 계속됐고, 지금까지도 잔존한 성차별적 발언들을 자신의 캐릭터로 승화해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가부장적 풍토를 묘하게 비트는 김숙의 발언에 뜨끔함을 느끼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터다.
그런 김숙에게 대중의 반응은 호의적이다. 김숙의 이름과 ‘걸크러쉬’를 합성해 ‘숙크러쉬’라고 부르곤 한다. 또 지난 2015년 영화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매드맥스’의 주인공 ‘퓨리오사’와 그의 이름을 합쳐 ‘퓨리오숙’이라는 별칭이 생겨나기도 했다.
김숙의 일관된 태도가 웃음을 넘는 큰 울림을 줄 것이라고 누군들 예상했을까. ‘무한도전’ 말미 “2016년 예능계에는 남녀의 화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김숙의 바람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bestsurplus@osen.co.kr
[사진] ‘무한도전’ 방송화면 캡처